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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대도시 경쟁력도 '샌드위치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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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뉴욕.런던.도쿄와 같은 소수의 대도시권 경제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듯이 대부분의 국가 경제도 소수의 대도시권에 의해 우열이 가려진다. 일본은 도쿄.오사카.나고야라는 3대 대도시권이 일본 경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큰 만큼 이보다 많은 수의 대도시권이 중국 경제를 견인하고 있고, 그중 상하이.베이징.광저우를 중국 경제의 3대 핵심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은 수도권이 압도적인 지위를 점하는 가운데 울산과 경남을 포함하는 부산권이 나라 경제를 견인해 가는 부차적 핵심 지역 역할을 하고 있다.

샌드위치론이 시사하듯이 한국의 대도시권은 일본의 3대 도시권에 비해 약세이며, 중국 대도시권의 추격을 받고 있다. 우선 경제적 수준을 보면 도쿄.서울.상하이 등 동북아 경제 핵심 대도시권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1985년에서 2004년까지 서로 수렴돼 왔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의 3대 대도시권이 한국과 중국의 대도시권보다 1인당 지역총생산에서 훨씬 앞서 있기는 하나 상대적 격차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더불어 한국과 중국의 대도시권 간 격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인적 자원 측면에서 도쿄는 오사카나 나고야 또는 서울과 부산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격차는 그다지 크지 않다. 반면 중국의 3대 대도시권의 인적 자원 수준은 일본이나 한국의 핵심 대도시권에 비해 아직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식기반 경쟁력 내지 혁신 역량 측면에서는 일본이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한.중 간의 격차는 없거나 중국이 앞서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쿄는 서울의 세 배(2004년 기준) 이상의 인구 1만 명당 특허출원 건수를 보여 주고 있는 데 반해 서울의 혁신 역량은 중국의 3대 도시권과도 별반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특히 부산의 혁신 역량은 중국 대도시권에 비해서도 취약하다.

도로 밀도로 본 공간 인프라 자원에서도 도쿄의 수준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나고야와 오사카이며, 상당한 격차를 두고 서울과 부산 그리고 베이징.상하이.광저우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국과 중국 대도시권 간의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항공 여객량으로 본 외부와의 교류 면에서도 도쿄의 지위는 압도적이다. 나머지 한.중.일 대도시권 간에는 이미 순위가 바뀌고 있다. 상하이.베이징.서울에 이어 오사카와 광저우 그리고 나고야와 부산이 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한.중.일 대도시권의 경쟁력에 관한 분석은 도쿄.오사카처럼 성장의 한계를 맞이하게 될 서울.부산 권역도 내부 혁신과 외부 교류를 통한 질적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 대도시권의 성장과 발전에 압도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대도시권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흩어져 있는 지식자산을 공유하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현재 기업별.기관별로 분산 관리되고 있는 대도시권의 지식자산을 권역 내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개선책이 절실하다. 또 대도시권 경쟁력 강화에 민간의 창의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대도시권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의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이고, 정부보다는 민간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대도시권이라고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 경쟁 부문에 특화해야 한다.

서울 대도시권은 선진 서비스업을 겨냥해야 한다.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비중으로 보면 서울(13.0%)은 8대 도시권 중 도쿄(18.3%)에 가장 근접해 있다. 일본의 기술적 우위와 중국의 비용 경쟁력 사이에 갇힌 한국은 제조업보다는 선진화된 서비스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유효하다. 따라서 서울권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으로의 조기 전환을 통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이는 권역 내 기능적 분화를 통해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인천.경기도 간의 기능 분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서울은 금융. 미디어.문화.국제업무 등과 관련된 지식기반 서비스를 강화해 나가야 하며, 경기도는 연구개발(R&D) 기능의 확충을 통해 지식기반 제조업에 특화돼야 할 것이다. 인천의 경우 특정 부문의 첨단제조업과 R&D, 국제 물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권역 전체의 상호보완성을 높여 장기적인 경쟁력을 제고하는 길이다. 이 구조조정과 기능 고도화가 원만하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서울.인천.경기도 세 지자체 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수도권경제발전협의회'와 같은 기구에서 출발해 보다 통합적인 경제관리기구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도 규제 중심의 정책에서 선별적 규제 완화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부산권은 울산.경남권이 가진 제조업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서울권과 같은 서비스 주도 경제로 전환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또 서울권과 달리 권역 내 지방 간 기능 분화나 통합이 진전되고 있지도 않다. 체계적으로 권역 내 협력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산권의 발전에는 혁신 역량의 획기적 제고가 절실하다. 그 혁신 역량이 중국의 3대 도시권보다 떨어짐을 직시해야 한다. 부산이 항만물류, 기계부품 소재, 관광.전시, 영상, 금융(선물거래), 해양바이오, 실버산업, 신발, 수산, 섬유.패션을 전략산업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산업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기반시설이나 연구개발 역량에 부합하는 소수의 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울산이나 창원에서는 나고야권과 같이 대기업이 주도하는 혁신체제가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R&D 기능을 확충해 관련 중소기업에 기술혁신을 전수하는 일본식 체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김원배 국토연구원 동북아발전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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