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못본 소설 재평가-옛날 작품 개작 다시 출간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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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독자에게 작품성을 다시 심판받겠다며 중진.중견 작가들이 유행처럼 소설집을 재출간하고 있다.
최근 재출간된 韓勝源씨의『포구』,李文烈씨의『詩人』,尹厚明씨의『협궤열차』,尹靜慕씨의『굴레』등은 2,3년전 멀게는 10년전에내놓았던 작품들을 고치거나 다시 엮은 것.이러저러한 이유로「기대 이하」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을 독자들을 상 대로 다시 한번 심판받겠다는 의도에서 재출간된 작품들이다.
韓씨의 장편『포구』(도서출판 장락)는 당초 독립된 중편소설로발표된「포구」「포구의 달」「달의 회유」3편을 묶어 84년 정음사에서 냈던 것을 이번에 문장 일부분을 손봐 개정판이란 이름으로 다시 내놓은것.『일부 독자들의 몰이해에 대해 해명할 기회를갖기로 했다』고 재출간 의도를 밝힌 韓씨는 이 소설이 자신의 고향 포구를 무대로 붙잡기와 떠돌기,혹은 구심력과 원심력이란 삶의 가장 끈끈한 원형질을 밝히려한 것임에도 평론가나 독자들이토속성.향토성으로만 재단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잘못 읽었다고 항변하고 있다.10년전 출간돼 8천부가량 찍었던『포구』개정판은 출간 1달만에 초판 4천부가 매진됐다.
李文烈씨의 장편『詩人』(도서출판 둥지)은 91년 미래문학에서출간된 동명의 작품에 92년 현대문학상 수상단편인「시인과 도둑」을 집어넣어 다시 엮은것.김삿갓의 방랑적 삶과 사고를 에세이식으로 재구성한 이 작품은『세계의 문학』90년 겨울호에 전재된후 곧 단행본으로 엮어져 10만부 정도가 팔렸다.
개정판을 내놓으며 李씨는『나는「시인」이 내 작품 중에서 가장훌륭한 것이기를 바라고 또 어느 정도는 그렇게 믿고 있다』는 말로 독자들의 재심판이 내려질것을 기대했다.실제로 이번『詩人』은 발간 5일만에 초판 4만부가 매진됐으며 출판 사측은 50만부는 무난히 나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尹厚明씨의 장편『협궤열차』(도서출판 窓)는 2년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동명의 작품을 대폭 개작한 것이다.각장의 내용들을다듬고 고쳐 작품 전체가 한 남자와 여자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매끄럽게 연결되도록 했으며 별도로 발표한 단편도 새로 첨부했다. 尹靜慕씨의 중편소설집『굴레』(인문당)는 각기 따로 발표됐던「굴레」「바람벽의 딸들」「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한데 모아엮었다.『세편의 작품이 다같이 日帝史의 이야기요,내가 눈떠온 日帝에 대한 인식의 변화들이라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는게 작가의 말.
이와같이 작가들이 작품을 재출간하는 것은 다시 한번 평론가와독자들의 엄정한 심판을 받기 위해서다.실제로 韓씨는『포구』출간을 전후해「恨이나 샤머니즘으로만 작품을 재는」평론가와 논쟁을 벌였고 李씨 역시『詩人』을 내놓은 뒤 민중문학진 영과 이념논쟁을 벌였다.
이제 출판계의 상업적 요구와도 손잡고 지난날 빛보지 못한 본격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재출간돼 독자들의 새로운 심판을 요구할것같다. 〈李京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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