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지인지감이 없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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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참고 삼가면 설화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지인지감(知人之鑑)’이 부족한 것은 금방 채울 길이 없다. 지인지감이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능력이다. 지도자는 이 능력이 있어야 인재를 제자리에 기용하고 배치할 수 있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세상에 백락(중국 주나라 때 말의 감식을 잘한 사람)이 있고 그런 다음에 천리마가 있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지는 않다”고 했다. 인재는 늘 있지만 백락의 눈을 가진 지도자는 찾기 힘들다. 천리마는커녕 좋은 말을 알아보는 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십 리도 못 가 고꾸라질 말, 주인을 뒷발로 걷어차기나 하는 말을 천리마로 오판하는 눈은 곤란하지 않은가.

노 대통령은 사람 복이 없다고 한다. 사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와 국민이 있는데 인복이 없다 할 수는 없다. 다만 대통령이 된 뒤엔 그런 것 같다. 우선 현 정권에서는 유난히 ‘배신자’가 많다.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 장·차관을 지내다가 물러나자마자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이 허다하다. “대통령에 대한 작은 의리보다는 국가가 옳은 길을 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다 헛소리다. 그들은 공직자로서 최소한의 직업윤리조차 갖추지 못했다. 아, 예외가 있기는 하다. 8월 물러난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에게 지금의 금융정책에 대한 글을 청탁했더니 “정권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노 대통령의 인복 없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환경부 장관이 장관직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청와대 비서관들이 사표를 내고 대선 예비후보 캠프로 떠났다. 국정원장은 ‘아프간 인질 협상의 성공 주역은 바로 나’라며 나서는 판이다. 대통령이 아끼던 정책실장과 비서관은 큰 스캔들에 휘말렸다. 대통령은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감싸주려 하는데 그들은 왜 대통령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노 대통령에게 사람 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다. 그야말로 ‘깜도 안 되는’ 인물들을 어느 날 갑자기 장·차관과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갖다 놨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공직의 엄숙함과 치열한 책임의식을 기대하는 게 무리다. 화는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제 역할 하는 각료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피력하자 이를 만류해야 할 외교부 장관이 한 술 더 떠 청룡언월도를 휘두른다. 외교부 핵심에는 지일파가 다수 포진해 있건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싸가지 없게’ 하면 국제사회에서 외면당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통일부 장관은 아예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북한에 양보하는 바람잡이 역할이라도 맡은 듯하다.

사람 보는 눈이 없으면 사람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상식도 소신도 없는 아첨배들이 대통령 주변에 벽을 쌓는다. 얼토당토 않은 ‘언론선진화계획’이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전혀 걸러지지 못하는 이유다. 경험이 쌓이고 지혜가 있어야 지인지감이 생긴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값비싼 경험을 많이 했으니 이번 대선에서는 ‘깜이 되는’ 대통령을 뽑는 지인지감을 발휘해 보자.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의 눈’을 갖추고 있기를 기대해 보자.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