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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구완하다 병 얻는다(특진/중병앓는 의료현장: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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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병원서 할 일도 보호자에 떠넘겨/미·유럽등선 엄격히 금지시켜/간호사당 환자 선진국의 4∼5배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남편(50·고교 교사)을 한달째 간호중인 문정희씨(45·주부)는 늘 충혈된 눈,부르튼 입술,창백한 얼굴에 기진맥진한 모습이어서 얼핏 보면 누가 환자인지 모를 지경이다.
남편은 심근경색과 신장기능 정지증세여서 밤에는 1∼2시간 간격으로 깨어 살펴봐야 하고 낮에는 각종 검사와 처치 등에 따라다닌다. 3일에는 오전 9시30분부터 6시간동안 점심도 거른채 혈액투석·혈액투석관 교체를 지켜보느라 탈진해 쓰러질 뻔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병원측이 『언제 돌발적인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검사받을 때도 항상 보호자가 곁에서 지키도록 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고3인 외아들이 혼자 집안일과 공부를 동시에 하고 있는 강릉 집에도 한달동안 들러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목욕도 한번도 못했다.
집안에 웬만한 입원환자가 생기면 가족중 한사람이 모든 일을 제쳐놓고 환자와 함께 병원에서 지내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병원측은 심지어 자신들이 해야 할 뒤처리를 보호자에게 떠맡기기까지 한다.
결핵성 늑막염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중인 아버지(68·목축업)를 간호하는 딸 유순씨(37·주부)는 지난달 27일 혈액·침 등의 가검물을 서울 양재동 결핵연구원에 접수시키고 오느라 4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결핵균 배양 정밀검사 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병원측이 가검물 접수를 보호자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이같은 간병 형태는 의료선진국에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대학강사 김모씨(35)는 독일 튀빙겐대학에 유학중이던 지난해 10월 중이염이 도져 이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사흘간 입원해야 했다. 함께 유학간 부인 문모씨(33·회사원)는 남편이 입원해 있는 동안 잠깐씩 면회하는 외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가족의 간병은 금지돼 있고 투약·식사 시중·목욕 등 환자의 모든 필요사항은 간호사를 찾는 버튼 하나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의사는 수술방법과 예상되는 후유증에 대해 문씨에게 상세히 설명했고 독일말에 서투른 것을 알고는 몇번씩 반복해 답변해주었다. 수술 다음날 남편을 찾았을 때 얼굴은 핼쓱했지만 표정은 편안하고 기분좋아 보였다.
남편은 수술후 먹은 식사를 밤새도록 토했는데 간호사가 이를 치워내고 환자복·시트를 몇번이나 갈면서도 한번의 불평없이 위로해줘 나중에는 미안해서도 부를 수 없었다고 했다. 덕분에 문씨는 남편의 입원기간중 다섯살된 아들과 함께 집에서 전혀 불편없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입원 및 수술비는 1인당 매달 60만마르크(약 3만원)씩 내는 단기유학자보험으로 모두 해결됐다.
우리나라는 환자 가족들이 별도로 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경비(하루 3만∼5만원) 부담때문에 이용률은 극히 낮다. 이용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병원의 경우 최근 1년간 입원환자 3만6천2백여명중 4%인 1천4백60여명이 간병인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활의학과가 23.4%로 가장 많았고 피부과는 전혀 없었다.
보호자들은 병원측에 비해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힘든 일도 마다할 수 없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입원환자 간병을 보호자가 실질적으로 전담하는 일이 ▲병원측의 인건비 절감 욕구 ▲가족에게 간병의무가 있다는 유교문화적 전통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환자측의 필요 등이 어우러진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유럽 등은 보호자의 간병을 엄격히 금지한다. 이에 대해 한국의료관리연구원 정두채박사는 『보호자가 병실에 상주하는 것은 환자·보호자 모두에게 감염 위험이 높고 옆 침대환자의 안정을 해치며 환자가 잘못되는 경우 병원측과 간병인 사이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핵가족화 추세에 맞춰 보호자가 간병을 안하는 대신 추가되는 병원인력 비용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 연구원 장현숙 연구위원은 『미국·유럽은 간호사 1명이 환자 5∼6명씩을 맡으나 우리는 20∼30명을 맡는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에는 환자 5명당 간호사 2명을 두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20% 정도밖에 지켜지지 않을뿐더러 이를 지키더라도 교대와 비번,행정업무 등을 감안하면 실제론 1명당 10명이 넘는 환자를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환자나 가족이 원하는 경우 특별 간호관리료를 내고 병원측이 간병을 전담하는 제도를 시범적이라도 도입해볼만 하다』고 제안했다.<조현욱·김창우기자>
□도움말 주신분
▲김창엽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
▲박용균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산부인과)
▲김준명 연세대 의대 교수(감염내과)
▲맹광호 가톨릭의대 교수(예방의학과)
▲최경숙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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