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평화체제, 송 장관 인식이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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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그제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평화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전(終戰)선언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달 초 열릴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말이 있는 상황에서 나온 송 장관의 발언은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평화협정”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송 장관은 “종전 선언을 지향해야 하지만 휴전 상태에서 평화 상태로 순식간에 가지 않는다”면서 “갑자기 종전 선언을 하면 전쟁은 끝나지만 평화는 없는 상태가 오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종전 선언을 하게 되면 당장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위협받게 될 텐데 이로 인한 혼란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송 장관의 발언이 한반도 안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바탕을 둔 올바른 문제 제기라고 본다.

북한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를 향한 관련국들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성급한 논의가 대선 정국과 맞물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무분별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시드니에서 한·미 정상이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겠다’는 뜻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키로 합의한 것이 이런 논의를 더욱 부채질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먼저 이뤄진 뒤에야 평화협정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평화체제는 남북한만 합의한다고 이뤄질 수 없는 문제임은 너무나 분명하다. 아직 갈 길이 먼 북핵 문제는 제쳐두고 현 단계에서 남북끼리 평화협정이나 종전 선언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무의미한 일이다. 자칫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보다는 군사적 신뢰를 쌓아감으로써 평화체제로 가는 기반을 닦는 것이 시급하고, 현실적이다. 신뢰가 구축되지 않는 상태에서 평화협정은 공허한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