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총공격, 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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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도전기 5국>
○ . 이창호 9단(왕 위)● . 윤준상 6단(도전자)

제6보(89~107)=가끔은 형세 부득이하여 억울한 길을 가게 된다. 89로 꼬부리는 윤준상 6단의 심정이 그렇다. 이 자리는 촌각을 다투는 급소이고 천하의 요충인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왜 억울한 느낌이 고개를 쳐드는 걸까.

이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89 자리는 꼬부리지 않을 수 없고 90에는 91로 젖히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좌하귀는 네모난 운동장처럼 거대한 집이 형성되고 흑은 세력을 얻게 된다. 세력이 나쁘냐고? 그건 아니다. 바둑의 상(相)을 보건대 세력이 지리산에서 바이칼호까지 펼쳐진다 해도 크게 쓸모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공격 대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좌상귀에서 중앙으로 뻗어 나온 백 대마가 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이 대마를 잡으러 간다는 것은 몸서리처지는 일이다. 지옥의 사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데 89로 꼬부리는 순간 흑의 운명은 '대마잡기'로 결정되었으며 그래서 '억울하구나'라고 느낀 것이다. 다른 좋은 길도 많았는데 하필 대마잡기라니….

A의 뒷문만 없어도 흑은 집으로 돌아설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초반에 A를 남긴 것, 그것이 어쩌면 지금 벌어지는 모든 것의 단초였는지도 모른다. 윤준상은 머릿속의 상념을 지우며 93 붙여 세력을 강화한다. 이창호 9단은 물론 하자는 대로 다 해준다. 그 역시 곧 태풍이 몰아칠 것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지만 그건 그때 대응하기로 하고 102로 넘을 때까지 조금의 양보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 이제 흑의 총공격은 어디서 시작되나.

윤 6단은 103의 절단을 공격의 첫수로 선택했다. 그 다음 105와 107. 드디어 사느냐, 죽느냐의 마지막 사투가 시작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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