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자금 공방의 허실/정철근 사회1부(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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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현철씨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까.』
『현철씨를 직접 본 적은 없으나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한 직후인 올 2월4일 이충범변호사와 롯데월드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한약업사구제협회 정치자금 제공의혹 파문을 일으킨 정재중씨(51)는 26일 오후 10시 법원의 보석허가로 석방되면서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이전 주장을 번복했다.
이로써 현철씨와 직접 만났다든가 정치자금을 주었다는 정씨의 종전주장 또는 소문은 일단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정씨는 이날 오후 4시쯤 석방확정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2월4일 이 변호사와 김씨를 만났으며 「당신이 건네준 돈에 대해 자꾸 정치자금이라고 주장해 더이상 문제를 확대시키면 혼을 내주겠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과다수임료로 물의를 빚고 청와대에서 물러난 이 변호사와 현직 대통령의 아들 이름이 거론된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건네준 당사자가 정씨가 아닌 한약업사구제협회 고문 지모씨였고 이 돈 자체가 변호사수임료임을 증명하는 계약서가 경찰 수사기록에 첨부돼 있었기 때문에 정씨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정씨는 사문서위조혐의 등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이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자신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변호인의 변론요지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흘러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정씨의 주장은 1억5백만원의 어음배서인에 현철씨 이름이 적혀있고 한약업사 자격을 복원시켜 주겠다는 「각서」를 받은 적이 있다는 등 미확인 소문까지 정치권 등을 통해 퍼지면서 파문이 확대되어 왔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물론 돈을 건네준 한약업사구제협회 고문 지모씨는 『문제의 돈은 변호사 수임료이지 정치자금이 아니다』고 여러차례 정씨 주장을 부인했다.
소송대리인 역할을 실제로 하지 않았으면서도 정씨가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사건이 표면화된뒤인 올 2월까지 15개월이 지나도록 수임료를 되돌려주지 않은 이 변호사의 행동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는 않으나 현재로서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이다. 로비자금임을 입증할만한 뚜렷한 증거도 없다. 사건이 법원에 계류중인 만큼 법원에서 의혹이 밝혀지기를 기대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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