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정권기자 gaga@joongang.co.kr]
재난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재난 상황과 개인별 성격이 좌우= 재난에서 벗어난 직후엔 누구나 불안·초조·멍함·악몽 등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행하진 않는다.
우선 재난의 심각성 정도가 중요하다. 예컨대 화산 폭발 경험자 중에는 20%가, 나치수용소에서 장기간 수용된 사람 중엔 85%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다.
개개인의 반응도 다양하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고, 남을 구하려 맹활약 하는 사람도 있다. 통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어릴 때 외상을 경험한 사람, 성격장애자, 주변(가족 등)의 지지가 없을 때, 체질적으로 취약한 사람, 과음하는 사람에서 더 흔하다 .
피해 상황 공유 여부, 재난 노출 기간 등도 발병 여부에 관여한다. 예컨대 인질 상황도 혼자보단 이번처럼 집단으로 수용된 경우가 낫다. 또 전쟁터 경험도 노출 기간이 길수록 정신적 충격이 커진다.
◆한 달 이상 지속되면 검진받아야= 재난 경험자들은 크게 세 가지 증상을 보인다.
또 이번 피랍자처럼 동료 중 사망자가 있을 땐 죄책감이나 수치심·배척감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런 급성 스트레스 증상들이 한 달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을 내린다. 간혹 재난 후 몇 달간 괜찮은 듯 보이다 6개월이 넘어서야 발병하는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도 있다.
◆어린이·청소년은 더 취약해=납치와 폭력, 자연 재난 등을 당한 어린이나 청소년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 게다가 어릴수록 스트레스 상황에 대응하는 전략이 미숙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또 성장기이다 보니 정신적 충격은 감정 발달 자체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심하다.
따라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을 때 혹은 반복되는 악몽, 복통·두통 등의 신체 증상, 활동 위축, 이전에 없던 야뇨증 발생, 충동적 행동(성적 행위, 약물 남용, 비행) 등이 나타날 땐 즉각 개입해 원인을 찾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개인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일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했다면 초기부터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약물은 짧게는 8주, 길게는 1년간 복용해야 하는데 항우울제 계통의 약물이 효과가 좋다.
정신치료의 첫걸음은 “이제는 괜찮다”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일. 또 수면 장애가 있을 땐 수면제를 사용해서라도 일단은 충분히 숙면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의 따뜻한 지지는 치료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 밖에 행동·최면·인지 치료 등이 도움이 된다. 단 재난 상황은 개인의 경험과 반응 정도가 다르므로 가족치료나 집단치료는 별반 도움이 안 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세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