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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초조·악몽 … ‘큰 사고’ 후유증 겪는 환자에게

중앙일보

입력

[일러스트 = 이정권기자 gaga@joongang.co.kr]

탈레반에 의해 악몽의 억류생활을 해온 21명이 돌아왔다. 척박한 땅에서 40여 일간의 억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신체적 건강은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와 동료의 희생에 대한 기억은 이들에게 오랜 세월 정신적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주변에는 항상 우리를 위협하는 위기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화재와 교통사고, 산업 재해, 폭행·강간·자연 재해가 그것이다. 따라서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위기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

  재난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재난 상황과 개인별 성격이 좌우= 재난에서 벗어난 직후엔 누구나 불안·초조·멍함·악몽 등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행하진 않는다.

 우선 재난의 심각성 정도가 중요하다. 예컨대 화산 폭발 경험자 중에는 20%가, 나치수용소에서 장기간 수용된 사람 중엔 85%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었다.

 개개인의 반응도 다양하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고, 남을 구하려 맹활약 하는 사람도 있다. 통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어릴 때 외상을 경험한 사람, 성격장애자, 주변(가족 등)의 지지가 없을 때, 체질적으로 취약한 사람, 과음하는 사람에서 더 흔하다 .
 피해 상황 공유 여부, 재난 노출 기간 등도 발병 여부에 관여한다. 예컨대 인질 상황도 혼자보단 이번처럼 집단으로 수용된 경우가 낫다. 또 전쟁터 경험도 노출 기간이 길수록 정신적 충격이 커진다.

◆한 달 이상 지속되면 검진받아야= 재난 경험자들은 크게 세 가지 증상을 보인다.

  

우선 환자는 당시 상황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재경험’을 한다. 이때 너무 괴롭다 보니 당시 상황을 잊으려 애쓴다. 그 결과 ‘ 감정적으로 무딘 상태’가 된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과민한 반응’도 나타난다. 우울·불안·집중력 감퇴와 사람에 대한 무관심, 공황 발작, 흥분 등 다양한 증상이 모두 나타날 수 있다.

 또 이번 피랍자처럼 동료 중 사망자가 있을 땐 죄책감이나 수치심·배척감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런 급성 스트레스 증상들이 한 달 이상 지속될 때 진단을 내린다. 간혹 재난 후 몇 달간 괜찮은 듯 보이다 6개월이 넘어서야 발병하는 지연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도 있다.

 ◆어린이·청소년은 더 취약해=납치와 폭력, 자연 재난 등을 당한 어린이나 청소년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 게다가 어릴수록 스트레스 상황에 대응하는 전략이 미숙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

 또 성장기이다 보니 정신적 충격은 감정 발달 자체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심하다.

 따라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을 때 혹은 반복되는 악몽, 복통·두통 등의 신체 증상, 활동 위축, 이전에 없던 야뇨증 발생, 충동적 행동(성적 행위, 약물 남용, 비행) 등이 나타날 땐 즉각 개입해 원인을 찾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개인별’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일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했다면 초기부터 약물치료와 정신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약물은 짧게는 8주, 길게는 1년간 복용해야 하는데 항우울제 계통의 약물이 효과가 좋다.

 정신치료의 첫걸음은 “이제는 괜찮다”며 환자를 안심시키는 일. 또 수면 장애가 있을 땐 수면제를 사용해서라도 일단은 충분히 숙면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의 따뜻한 지지는 치료 효과를 배가시킨다. 그 밖에 행동·최면·인지 치료 등이 도움이 된다. 단 재난 상황은 개인의 경험과 반응 정도가 다르므로 가족치료나 집단치료는 별반 도움이 안 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세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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