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과 충신(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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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신하가 임금에게 간한다. 『폐하,원컨대 신으로 하여금 충신이 되지말고 양신이 되게 하소서.』 『그런 무슨 까닭인가?』 왕이 의아해 묻는다. 『양신이란 요순임금 밑에서 훌륭히 정사를 돌본 직과 계같은 신하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도 높이고 후손도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충신이란 결국 황제의 타락과 모자람을 간하다 끝내 자신도 망치고 가문도 망칩니다. 남는 것이란 겨우 이름 석자뿐입니다.』
대통령도 애독했다해서 장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른바 치국의 통치술을 다루었다는 『정관정요』에 나오는 대목이다. 신하라는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온갖 모험을 무릅쓰고 임금의 잘못을 간하고,이래서는 안되며 저래서는 옳지 못하다고 주장하고 요구한다는게 여간 위험스런 일이 아니다. 이런 위기상황이 와서는 신하 노릇하기가 정말 어렵게 된다.
임금의 지시에 순종하고 시키는대로 하기만해도 만사가 잘 풀린다면 이야말로 양신이 되는 것이다. 임금이 잘나야 신하도 목숨 떼어놓고 직간하는 충신 아닌 양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임금이 일을 잘못하면 신하의 처지가 더욱 어렵게 된다. 임금에게 잘못했다고 바득바득 대든다면 임금 입장도 어렵고 신하의 목숨은 더욱 위태로워진다. 충신 아닌 양신이 되겠다는 말은 뒤집어보면 신하가 목숨 걸고 간하는 잘못을 임금 스스로 저지르기 말아달라는 완곡한 표현이 된다.
어느날 왕이 물었다. 『요즘 어째서 벼슬하는 신하들이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는가.』 신하가 대답한다. 『아직 충분히 신임을 얻지 못하면서 왕에게 간한다면 듣는 쪽에서는 자신을 헐뜯는 것으로 오해할 것입니다. 또 신임을 받으면서도 간하지 않는다면 이는 국록을 훔치는 도둑입니다.』
여기에 임금과 신하라는 말을 사장과 부장이라는 말로 한번 바꿔봄직도 하다. 사장이 매사에 능할 수 없으니 직언할 수 밖에 없는게 부장의 도리겠지만 부장이라해도 아무 때나 함부로 직언할 수도 없다. 일단은 사장의 지시대로 해본 다음 그 부당성을 지적한다거나 또는 회사내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은 다음에야 이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해야 부장의 의견도 신용이 가는 법이다.
아무런 업적도 없이 내가 부장이라는 직위만을 내세워 사장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려든다면 이 또한 양신 아닌 충신의 길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신하를 양신·충신·간신으로 만드는 일은 신하보다는 임금에게,부장보다는 사장 하기에 달려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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