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실리를 주고 명분을 택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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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기 5국>
○ . 이창호 9단(왕 위) ● . 윤준상 6단(도전자)

제4보(61~73)=윤준상 6단이 '뭔가 힘겹다'고 느낀 것은 61 젖히고 62 늘었을 때다. '참고도' 흑1의 전개는 매우 크다. 우측 흑세가 강한 만큼 이 수를 두는 즉시 백△는 거의 죽은 목숨이고 그리하여 하변에선 제법 상당한 실리를 보장받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실리가 좋다 해도 백이 63 자리를 꼬부려 오는 아픔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 자리를 당하면 우상 백대마는 영영 공격할 수 없는 돌이 된다.

윤준상은 "끙"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63으로 밀어 버렸다. 눈을 감은 채 상대의 착수를 기다린다. 하변이 놓칠 수 없는 실리라면 63 역시 놓칠 수 없는 명분이며 그곳을 밀지 않으면 바둑도 아니다. 대마 공격은 요원한 노림이지만 이 불확실성에 목을 거는 것이 기세요, 바둑이다.

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눈을 뜨니 64에 돌이 놓여 있었다.

그 수를 보는 순간 윤준상의 가슴엔 찬바람이 휭 하니 분다. 집이 부족하다. 힘든 여정이다. 65로 바짝 다가서고 67로 머리를 두드리며 불끈 힘을 내본다. 흑의 수들은 모두 백대마를 은근히 위협하며 계속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66, 70이 보여 주듯 집 차지의 손길을 멈출 기색이 전혀 없다. 대마는 정녕 안녕하단 말인가.

71의 응수 타진에 이 9단은 비로소 귀살이를 허용하는 약간의 양보(72)를 보여 준다. 하지만 이 시점의 귀살이는 흑의 강점인 두터움을 헐값에 팔아 넘기는 전술착오일 뿐… 윤준상은 73으로 푹 파고 들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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