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푸는역시] 관원 임명 때 동의 권한 … 왕의 전횡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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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선시대 대표적 언론기관은 사헌부와 사간원이다. 별개의 기관이었지만 실제 기능면에선 밀접한 연관을 지녔기에 이곳 관원들을 대간(臺諫) 혹은 언관(言官)으로 통칭했다. 관리들의 비리를 감찰하며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고, 정책과 인사 등에 대한 간쟁을 통해 왕의 전횡을 막는 일이 기본 임무였다. 왕이 신하를 접견하거나 경연하는 자리에 입시했고, 문무 관원을 임명할 때도 대간들의 동의가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자리였다.

 특히 사헌부는 형조·한성부와 함께 왕의 교지를 받아 법령을 집행하는 임무까지 수행했다. 국정 전반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조건을 다각도로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여기에 또 홍문관(궁중의 경서와 서적 관리)으로 하여금 대간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게 했다. 사헌부·사간원의 간언을 왕이 듣지 않을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홍문관까지 가세해 다시 간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권력을 견제하고 비리를 감시하는 이 세 곳을 ‘언론 삼사(三司)’라고 부른다.

 조선에는 백성들 개개인의 뜻이 왕에게 바로 전달되는 제도도 있었다. 신문고나 격쟁이 그것이다. 격쟁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임금 행차 길에서 꽹과리를 쳐서 호소하는 방법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정 전반을 홍보하는 조보를 발간했다. 오늘날 관보와 같다. 매일 쏟아지는 ‘보도자료’가 승정원에 게시되면, 각 관아에서 파견된 아전들이 필사해 소속 관청에 배달했다. 조보는 하향식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이에 반해 선조 때는 지식층들이 ‘민간 조보’를 제작해 관청과 일반 독자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오늘날 신문이나 다름이 없다. ‘민간 조보’는 합법적으로 발행됐지만, 조정의 불미스런 일을 들추게 되면서 곧 폐간되었고, 관련자 30여 명은 유배됐다. 정상적인 언론 소통이 억압당하자 조선후기에는 벽서·괘서·사발통문과 같은 비정상적 언론 형태가 번성하게 된다. 알 권리는 권력으로 막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는 여기서도 발견된다.

박홍갑(국사편찬위원회 연구편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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