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연쇄자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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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독일의 문호 괴테가 25세 때인 1774년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고 난후 전세계에서는 청소년들의 자살사건이 속출했다. 괴테 자신의 친구 약혼녀와의 연애경험과 또다른 친구가 유부녀를 사랑한 끝에 자살한 사건을 모델로 했다는 이 소설은 출구없는 사랑의 고통과 기존의 가치관에 대한 저항이 세계 청소년들에게 적잖은 공감을 주었던 것이다. 남자쪽에서는 20대 초반 베르테르 또래의 젊은이들이,여자쪽에서는 주로 10대 후반의 소녀들이 베르테르를 동정해 자살했던 것도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 초반 한 명문여자고등학교의 여학생 두명이 이 작품을 읽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그들이 남긴 유서에는 베르테르에 대한 동정과 그에 따른 삶에의 회의가 깨알같이 박혀있어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진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자살은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자살만큼 비겁한 행동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용기있는 행동이든 비겁한 행동이든,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살할만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결코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앞의 두 여학생의 경우는 이미 그들의 감수성이 극점에까지 도달해 있어 그들의 자살을 말리기 어려운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책임을 돌리자면 평소 그들의 감수성을 여과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부모 등 주변의 무관심을 탓해야 할까.
그러나 진학에 실패했거나 학업성적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청소년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서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청소년들은 공부에 매달리느라 문학작품 따위를 읽고 감수성을 키울만한 겨를이 없다.
공부 못하고 진학 못하면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반드시 소외되고 만다는 고정관념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초조와 갈등속을 헤매게 하는 것이다.
엊그제 부산에서 일어난 여고생 두명의 잇따른 자살사건도 입시의 중압감이 원인이라고 한다. 학업 때문에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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