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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대안

“미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인상 주면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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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앞으로 기독교 해외 선교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지를 두고 논의하는 토론자들. 왼쪽부터 김영동 장로교신학대 교수, 한정국 목사, 강치원 강원대 교수(사회), 이원규 감리교신학대 교수, 송재룡 경희대 교수.[강정현 기자]

이번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은 국내외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특히 개신교의 해외 선교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선교와 봉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느냐에서부터 해외 선교보다 국내 봉사활동이 더 시급한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과연 해외 선교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가.

무엇보다 현지의 정치·사회·문화 상황을 충분히 숙지하고, 나와 다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남을 섬기는 자세로, 장기간에 걸쳐 접근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치원(사회)=최근 기독교 선교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2의 선교 대국이라 하는데 특공대식·배타적·공격적 선교라고도 하고 ‘19세기 미국의 선교 방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단기 선교를 통한 성과 위주 사업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원규=선교라는 것은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하나의 과제요, 사명이다. 사람들에게 구원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 선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현지의 문화·정치 상황을 충분히 고려치 못한 상황에서 이뤄져 벌어진 일이다.

▶송재룡=선교도 시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사건도 100년 전 선교사들의 방법대로 배타적이고 과열될 정도의 열정적인 선교를 해 벌어진 것 아닌가.

▶김영동=한국 개신교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내지는 자기 성찰을 위한 어떤 뼈아픈 회초리라고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스물 세 명이 다 역사적 죄인도 아니고 그들이 공격적 선교를 한 것은 아닌 것으로, 십자가를 진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정국=이번 피랍된 스물 세 명의 행위가 ‘공격적이었다’ ‘ 특공대식이었다’는 평가는 좀 지나칠 수 있다. 선교가 갖는 면을 보면 하나는 콘텐트고, 또 하나는 형식이다. 각 종교가 갖는 독특함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단지 이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선 현지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현지인을 존중하는 자세로 젠틀하게 접근해야겠다는 것을 이번에 학습했다고 생각한다.

▶이원규=기독교 역사를 보면 선교는 힘있는 자가 신앙을 강요하는 형태를 띄어 왔다. 유럽이 강한 군사력으로 다른 대륙을 지배하고 식민 통치하면서 종교를 강요하다시피 한 사례가 많았다. 오늘날엔 섬기고 돕고 사랑을 베푼다는 의식을 갖게 됐는데 불행하게도 한국 교회는 아직까지도 전근대적인 선교관을 갖고 있다. 한국 교회도 이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한정국=칸다하르의 백기원 목사에게 “왜 거기 갔느냐” 했더니 “다른 곳은 NGO가 다 들어갔는데 여긴 없어서 갔다”고 하더라. “선교는 둘째고, 나무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니 유치원부터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자마자 죽는 아이들을 보며 병원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혼자 모두 할 수 없어 다른 팀도 오게 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외부 잣대만 가지고 판단하면 너무 피상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송재룡=한 목사 말도 맞다. 하지만 경제주의적 물량과 자기가 은혜받고 은총받은 것을 열정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요도 어떻게 보면 ‘문화적 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강치원=현지인과 함께하는 선교가 필요한데, 개별적으로 이뤄지며 활동가 상호 간에 의견 교환이 어려운 상태란 얘긴가.

▶이원규=선교지 현지의 종교적·문화적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정치·사회적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우리식대로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또 선교하러 갈 때, 준다는 입장과 섬긴다는 것은 다르다. 너희처럼 열등하고 미개한 사람들에게 이런 걸 나눠준다는 인상을 준다면 역기능이 생긴다. 우린 그저 섬기기 위해 왔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송재룡=전문화가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단 말이다. 이렇게 하려면 중장기 선교가 필수적이다.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단기 선교는 아예 파송을 지양해야 한다.

▶강치원=단기 선교의 정의를 내리자면.

▶한정국=6개월 이상 3년 미만을 단기 선교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특유의 ‘명분 문화’가 있다. 한국문화 특성상 자신의 행위를 미화시키기 위해 그런 것에도 ‘선교’라는 이름을 붙인다. 1~2주짜리에는 선교라는 말을 붙여선 곤란하다. 서구에선 이런 것은 ‘미션 트립’이 아니라 ‘스터디 트립’이라고 한다. 우리도 이런 활동은 ‘타 문화 체험여행’ 같은 식으로 솔직히 이름 붙여야 한다. 장기 선교사 같은 경우 타 문화권에 대해 문화인류학·사회학이라든가 하는 것은 3개월 이상 받고 나간다. 이번에 문제가 벌어진 아프간에도 115명의 장기 사역자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다.

▶김영동=미국은 한 2년까지 단기 선교로 인정하고 4년을 기본 기간으로 하지만 교단에 따라 다양성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하는 1~2주간의 봉사나 학습을 선교라 불러선 안 된다(일동 동의).

▶강치원=그렇다면 봉사와 선교의 구분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김영동=통전적 선교라는 개념이 있다. 통합적·입체적 선교와 같은 말이다. 여기엔 전도·교육·봉사·교제의 네 가지가 포함된다. 봉사는 또 소셜 서비스(social service)와 소셜 액션(social action)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구호 활동, 후자는 사회구조적 봉사로 예방 차원의 것이다. 선교는 그래서 광의의 개념이고, 봉사는 협의의 개념이다.

▶송재룡=통전적 선교라 해도 선교 대상지에 따라서도 달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번 경우에도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이냐를 고민해야 했다고 본다.

▶김영동=우선순위 문제다. 복음주의자들은 시간적 우선순위가 아니고 논리적 우선순위를 따진다. 지진이 일어난 데 가서는 전도가 먼저 아니듯, 반드시 모든 선교사가 개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선교사는 평생 봉사 사역만 할 수도 있다.

▶한정국=샘물교회는 단기 해외봉사라고 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칸다하르 병원과 유치원을 돕기 위해, 실제로 그런 유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보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선교의 목적을 빼고 순수하게 봉사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개념을 전수하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이다.

▶이원규=칸다하르에선 우리가 세운 병원 유치원에 탈레반도 와서 혜택을 받았다지만, 그게 순수하게 봉사한다고 해서 그렇게 받았겠지, 예수라는 이름이 나왔어도 그랬겠는가.

▶김영동=해외에서 장기 선교사들이 교회·병원 등을 짓고,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것에 치중하는데 한국 교회는 그런 선교사를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또 후원을 잘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존재의 선교가 필요하다. 가즈니의 많은 아프간 사람이 인질들을 풀어달라고 시위도 하고 했는데 그게 다 형제라 생각해 그런 것이다. 땅을 사고 건물 짓는 차원이 아니라 이웃이 돼야 한다.

▶강치원=해외 선교보다 국내 봉사활동이 더 시급한 것 아닌가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한정국=한국기독교회가 한국 내에서 상당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보다 축소돼 알려졌다. 또 누군가 해외에서 알지도 못하는데 찾아와 우릴 도왔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도 해외에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송재룡=국내 기독교의 구호활동이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지가 부정적인데 이 부분을 반성적으로 봐야 한다. 21세기 삶의 가치도 다양하고 방식도 다양하다. 그것은 다원적 가치에 대해 한국 교회가 관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치원=그렇다면 왜 반(反)개신교 정서가 강한가.

▶이원규=한국 갤럽에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다. 전통 종교 가운데 호감도가 제일 낮은 것이 바로 개신교다. 요인은 ▶다른 종교인, 무종교인에 대해 배타적이다 ▶팽창주의와 성장 제일주의 ▶전도 방법이 혐오스럽다 ▶교회 안에서만 요란하고 시끄럽지, 지역사회를 위해 하는 일이 없다 ▶물의를 일으키는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평상시 개신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 했기 때문에 이번 일이 공격의 빌미가 됐다.

▶김영동=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보다 밖에 있는 사람 얘길 더 들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이 타 종교인이나 불신자의 이야기를 좀 더 들을 필요가 있다. 또 과시적·물질적 성장주의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백성의 마음속에 예배당 짓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송재룡=비관용성이 문제다. 싫든 좋든 간에 우리와 다른 생각, 다른 삶에 대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문화주의·다원주의의 시대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로의 개종이라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정국=비판하는 입장 역시 관용적이지 못하다. 양들을 사랑하는 목자의 심정에서 돌아간 배형규 목사의 희생적 삶의 관점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너무 비판적 관점에서 조명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김영동=관용과 타 종교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다원주의와 다양성은 구별해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나 종교 다원주의는 위험하다. 어떤 학자들은 ‘구원들’이라고 표현한다. 각 종교의 구원을 복수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원규=한국 기독교인 성향을 분석해 보면, 개신교 교회 지도자 가운데 절대 다수가 소위 배타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고 30% 정도가 포용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평신도를 보면 다원주의 10%, 포용주의 30%, 배타주의 성향이 60%로 조사된다. 이러니 다른 종교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다원주의는 교회 근원까지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좀 그렇고, 다원주의 상황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우리 종교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포용주의로 조금 더 나가야 한다.

▶송재룡=우리 한국 교회에 선교와 관련해 신앙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보다 더 관용적 신앙의 태도를 갖기 위해선 개개의 교회나 교단별로 교인에게 비관용적인 언사나 언어, 그런 태도를 부추기는 듯한 식의 설교 말씀을 지양해야 한다.

▶이원규=해외든 국내든 간에 선교를 한다 했을 때 명심해야 할 것은 개인이 아니고 교회·교단·국가, 즉 책임있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여러 가지 물의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가 아니고 하나의 시민이고, 국민이고, 하나의 교인이고… . 그런 의식을 가지고 책임 있게 활동해야 한다.

정리=강승민 기자 <quoiqu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토론 참석자·가나다 순>

김영동
장로교신학대 선교학과 교수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이원규
감리교신학대 종교사회학과 교수

한정국
목사·세계선교협의회

사회
강치원 강원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