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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오락가락 내신정책 이번엔 로스쿨로 압박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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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육인적자원부가 올 대입(2008학년도) 정시모집에서 학생부(내신) 실질반영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지 않은 대학을 제재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내신 반영비율과 행정.재정적 제재를 연계하지 않겠다"는 종전 입장을 바꾼 것이다. 대학들은 "입시 전형을 놓고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는 교육부를 믿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전국 199개 4년제 대학 중 내신 반영비율이 30% 미만인 곳은 사립대 7곳과 신학대 15곳 등 22곳이다. 교육부는 이 중 고려대.연세대.서강대.성균관대.이화여대.한양대.중앙대를 제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 대학의 내신 반영비율은 17~23% 정도다. 교육부는 내신 1~2등급을 동점 처리키로 한 서울대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교육부 우형식 대학지원국장은 4일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권고한 내신 반영비율 30%를 반영하지 않기로 한 대학들이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며 "정부 권고안에 적극 동참한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을 차별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우 국장은 "내신 반영비율을 낮게 책정했거나 등급 간 점수차를 작게 한 대학은 제재가 불가피하다"며 "내년 2월 말 모든 입시전형이 끝나면 별도 입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제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두뇌한국(BK21)'사업, 지방대학 혁신역량강화(누리)사업, 인문학 진흥사업 등 재정지원사업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우 국장은 특히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설립인가 때 내신 반영비율에 따른 차등점수를 줄 것인지는 로스쿨 심의기구의 자율에 맡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달 말 구성 예정인 심의기구(교육부 장관이 임명)가 대학별 내신 반영비율을 평가요소로 넣어도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말 뒤집기=우 국장의 이날 발언은 "대학에 자율권을 주고 행정.재정적 제재는 않겠다"고 밝힌 김신일 교육부총리와 서남수 차관의 종전 입장을 뒤엎는 것이다. 김 부총리는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50%까지 높여라"는 교육부 압박에 대학과 교수의회, 교수단체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집단 반발하자 7월 6일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그는 "올해는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가급적 30% 수준에서 출발하고 3~4년 이내에 단계적으로 목표치에 도달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내신 반영비율이 30%를 넘지 않아도 손을 대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서남수 차관도 같은 날 "정책기조에 변화가 있다"며 제재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부 사립대가 "실력 차를 인정하지 않는 내신을 믿을 수 없다"며 1~4등급 동점 처리를 추진하는 등 '내신 무력화'를 시도하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제재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가 물러난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청와대의 지시로 두 달 만에 다시 입장을 바꾼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내신 중심 선발로 바꾼 노무현 정부의 새 대입안이 임기 말에 먹히지 않자 자존심을 세우려 강경책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대학 반발=해당 대학들은 "교육부가 '괘씸죄'를 적용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고려대 관계자는 "최대한 노력해서 이만큼(17.96%) 올렸는데 제재를 하겠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서강대 관계자는 "교육부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바꾼 것 같다"며 "언제까지 대학을 입시로 옭매려 하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로스쿨과의 연계 소문이 나돌 정도로 교육부의 압박이 심하다"며 "정부가 대학의 경쟁력만 갉아먹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려대 권대봉 교수는 "국장이 부총리의 말을 뒤집은 것은 청와대의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정부가 대학의 자율화와 선진화를 포기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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