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중복이냐, 두터움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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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기 4국>
○ . 이창호 9단(왕 위) ● . 윤준상 6단(도전자)

제2보(20~40)='백 실리, 흑 세력'의 정석이 끝나가고 있다. 윤준상 6단의 23이 재미있는 수. 백이 A로 밀고 나오면 B로 젖히려 한다. 그 다음 행마가 쉽지 않으므로 이창호 9단은 24의 요소부터 선점한다. 바로 이때 윤 6단이 25로 곧장 기어 나오는 바람에 구경꾼들은 기겁을 하고 만다.

이 흑 두 점이 잡히면 바둑은 끝장이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백이 곤란한 것인가. 25는 윤 6단이 준비해 온 비장의 무기일까.

한데 이창호 9단은 별 고민을 하는 기색 없이 26, 28로 쉽게 포기해버린다. 선수를 잡아 30의 요소로 달려가는데 그 모습이 의외로 가볍다. 침묵에 잠긴 검토실의 표정이 묘하다. 이윽고 터져 나오는 한마디. "흑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흑27, 29는 콘크리트 벽처럼 두껍지만 너무 느리고 어딘지 중복의 냄새가 풍긴다. C의 뒷문이 터진 것이 프로들의 눈엔 무엇보다 거슬린다. 김지석 4단은 '참고도' 흑1, 3을 그려 보이며 "이것으로도 흑은 충분히 두텁다"고 말한다. 이미 두터운데 더 두텁게 만들기 위해 후수를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미다. 바둑은 능률의 게임이며 어느 것이 더 능률적이냐를 놓고 시각은 항상 엇갈린다. 하지만 이 대목은 윤준상 6단의 실패였음이 결국 드러나게 된다.

백이 30으로 요소를 걸쳐 헤집고 나오자 흑은 큰 모양이 사라졌다. 게다가 C의 뒷문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프로들이 가장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집 부족증'이 벌써 희미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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