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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고함(孤喊)] 민중의 섬세한 포효 '산조' 세계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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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소극장에서 열린 한국산조학회의 한 장면. 가야금 양승희와 제자들, 장구 정화영.

산조는 우리 민족 예혼(藝魂)의 정화(精華)요, 정맥(正脈)이요, 정점(頂點)이다. 나 도올은 항상 뇌까리곤 했다. 산조가 없다면 이 조선 땅에서 살맛이 없다. 산조를 들어보라! 드넓게 트인 광야를 달리는 휘모리의 말발굽 소리! 비록 조선 말기에 태어났다고는 하나 아사달 신단수 솟터의 함성이 물결치는 태고의 숨결이 배어 있고, 느린 진양 속에는 조선 민족의 인종과 희망의 기나긴 침묵이 흘러나온다. 산조는 우리 민족 예술사의 압축태, 저 천지에서 흘러 영암.해남 땅끝까지 내려 뻗친 백두대간의 모든 산맥(散脈)을 한 줄기로 휘어잡은 정맥이요, 대맥! 예악의 관념으로 짓누를 수 없는 토속적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표출, 순환의 반복으로 가두어 둘 수 없는 직선적 희망의 분출, 다듬어진 격률 속에 정형화될 수 없는 발산하는 생명의 약동, 계급적 고매함으로 얕볼 수 없는 민중의 거칠면서도 섬세한 포효다. 산조는 이 민족의 영원한 아포칼립스!

지난 금요일(8월 31일) 오후 내내 한국예술종합학교 소극장에서는 산조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한국산조학회 사람들의 진지한 토의가 오갔다. 산조(散調)란 본시 '흩어진 가락'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처음 들은 사람들이 폄하해 부른 말이지만 그만큼 파격과 충격이 컸다는 것을 방증한다. 하긴 베토벤 음악의 아름다운 유포니(euphony: 협화음)도 당시에는 카코포니(cacophony: 불협화음)로 들렸다 하니, 신기원을 수립하는 모든 위대한 음악은 다 산조라 해야 옳다.

조선 후기에는 다양한 민속풍류의 등장과 더불어 풍류를 편하게 탈 수 있도록 악기의 개량이 진행되었고, 이러한 악기 개량과 더불어 남도의 시나위가 가야금 독주곡화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판소리부터 모든 기악에 무소불통했던 명인들이 판소리의 선율과 리듬을 가야금곡으로 압축시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산조는 소리 없는 판소리"라고 한 일산 김명환(金命煥, 1913~89)의 일갈은 천하의 명언. 한 민족의 기나긴 음악적 성취를, 반주음악이 아닌, 한 시간이나 계속되는 추상적인 순수 기악곡의 절대음악(Absolute Music)으로 승화시켜 표현한 것은 세계 민족음악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의 장단틀을 정형화해 전승시킨 최초의 인물은 영암 사람 김창조(金昌祖, 1856~1919)이다. 나도 일찍이 그 친손녀인 김죽파(金竹坡, 1911~89)로부터 직접 김창조에 관해 들은 적이 있으나, 워낙 어릴 적의 이야기인지라(죽파 8세 때 서거) 별로 신통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죽파 선생 별세 후 그 적통 수제자 양승희가 옌볜(延邊)에 가서 김진(金震)이라는 명인을 만났는데, 그가 이미 1955년 평양에 유학하여 5년간 안기옥으로부터 김창조 산조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안기옥(安基玉, 1894~1974)은 나주 사람으로 김창조의 가야금을 직접 구전심수한 사람이다. 김창조에 관한 북한 자료들이 공개되면서 산조에 대한 이해가 풍요로워졌다. 양승희는 2000년 죽파의 유언에 따라 영암에 가야금산조현창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었고, 2004년에는 한국산조학회를 만들어 많은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 사업에 거금을 희사해 온 제이씨테크놀로지스의 노만균(盧萬均) 박사의 헌신적 노력도 아울러 기억해야 마땅하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는 종묘제례 및 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3개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선언'의 품목에 속한 것으로, 단지 선언일 뿐 국제법상의 의무나 권리가 없는 이벤트성의 사건이었다. 2005년 4월에 새로운 무형문화유산 보호협약이 발효되면서 걸작선언은 폐기되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목록의 작성이 추진되고 있다. 내년 6월부터 새로운 정부간위원회의 협약운영지침에 따라 세계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의 등재 작업이 시작된다. 물론 기존의 걸작선언 3건은 자동적으로 이체될 것이지만 새로운 목록의 등재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 등재 과정은 영암군에서 우리나라 문화재청으로 등재신청을 내면, 문화재청에서 유네스코 사무국에 신청을 해야 한다. 그 일차적 신청 순위는 물론 우리나라 문화재청에서 정하게 된다. 그 순위를 두고 많은 논란과 시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야금산조 예술의 유니크한 성격과 그 민족사적 대표성을 심각하게 인지해줄 것을 관계자 모두에게, 모든 산조 명인의 열망을 모아 나 도올은 앙망한다. 한국산조학회가 유네스코 자문기구로 들어가는 문제도 심각히 토론되었다.

이러한 모든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유산을 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대선 이슈로도 이러한 문화적 아이템이 중요한 논제가 되어야 한다.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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