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아저씨들의 신나는 놀이판-즐거운 인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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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14면

‘즐거운 인생’은 이준익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이자 두 번째 ‘음악영화’이다.
‘황산벌’ 이후 그의 영화가 담고 있는 일관된 핵심어는 ‘놀이-판’이다. ‘황산벌’의 전장(戰場)과 ‘왕의 남자’의 궁정(宮庭)이 바로 그 ‘놀이-판’이었고, 그는 그 ‘마당’에서 공인된 역사를 맘껏 비틀며 놀았다.

‘라디오 스타’와 ‘즐거운 인생’에서 그 ‘놀이-판’은 한물간 남자들의 고단하고 비루한 삶의 현장으로 바뀌었고, 그는 그 ‘현장’에 고단한 삶을 위문하기 위한 작은 무대를 만든다.
문제는, ‘놀이-판’에서 훈훈함은 늘어가는데, 정작 신명은 엷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 스타’가 한물간 퇴물 로커가 뒤늦게 ‘꿈 깨는’ 영화라면, ‘즐거운 인생’은 한물간 생활 퇴물들이 뒤늦게 로커를 ‘꿈꾸는’ 영화다. 그런데 그 ‘꿈꾸기’는 ‘꿈 깨기’만큼의 설득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간 것은 ‘라디오’와 ‘스타’였지만, ‘즐거운 인생’에서 한물간 것은 세 남자의 인생 그 자체다. 게다가 ‘라디오 스타’는 영월이라는 순수의 공간 또는 판타지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였지만, ‘즐거운 인생’은 팍팍한 삶의 현장 자체가 그 무대다. 그만큼 버거워진 삶의 무게를 영화는 너무 쉽게 넘어서려 한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놀이’와 ‘판’이 따로 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라디오 스타’에서의 ‘놀이-판’은 영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져 간다.
비록 유일했던 진짜 ‘무대’는 징후적으로 썰렁했지만, 영월 사람들은 최소한 그 무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중요한 조력자들이었다. 그런데 ‘즐거운 인생’에서의 ‘놀이-판’은 단지 그들만의 무대일 뿐이다.

‘황산벌’에서 계백 아내의 통렬했던 대사(“호랑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 땜시 디지는 거여, 인간아!”)는 ‘그들만의 역사’에 대한 통쾌한 일갈이었지만, ‘즐거운 인생’에서 그녀들의 바가지는 그저 ‘그들만의 무대’를 더 빛나게 하기 위한 극적 장치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변성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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