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OCUS] 안경수 소니 솔루션사업부문 총괄대표 인터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호 18면

신인섭기자

지난달 중순 일본 도쿄의 시오도메에 있는 후지쓰 그룹 본사. 23층에 있는 안경수(55) 아태지역 총대표방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소니 먹여살릴 신제품 개발 특명 받아

평소 친분이 있는 헤드헌팅 업체로부터였다. 안 대표는 그 업체를 통해 후지쓰의 호주지사 사장을 소개받는 등 평소 ‘이용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반대였다.

“소니의 스트링거 회장과 주바치 사장이 안 대표님을 꼭 만나고 싶답니다.”

먼저 주바치 료지(中鉢良治) 사장을 만났고, 며칠 후 하워드 스트링거 회장과의 면담이 이어졌다. 이들의 질문은 주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어떻게 끌고 나가면 되겠느냐” “솔루션 비즈니스의 확대 방안은 어떤 게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차원적인 대화가 한 시간여 오간 후 이들 두 사람은 바로 안씨의 팬이 됐다. 안씨의 식견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소니 수뇌부는 안씨에게 파격적 대우와 함께 소니 입성을 즉각 제의했다.

안씨에게 제시된 자리는 솔루션 사업 담당 EVP(Executive Vice President). 20만 명의 종업원을 이끄는 소니 그룹의 서열 6위에 해당하는 핵심 위치였다. 종업원 22만 명의 삼성그룹으로 따지면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총괄사장쯤에 해당하는 자리다.

“솔직히 깜짝 놀랐어요. 소니가 차세대의 핵심으로 삼을 신규사업부문을 만들면서 나에게 러브 콜을 던질 줄은 몰랐거든요. 나야 한 달 중 3주가량은 한국·인도·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11개 국가를 돌아다니느라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근데 또 하나 진짜 놀란 게 있습니다. 주바치 사장이 나에게 ‘당신네(후지쓰) 회사에서 당신을 안 놓아준다고 그러면 내가 당신네 사장을 만나 설득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일본식 기업문화에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경영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데…, 어쨌든 소니가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일본의 간판기업이자 기술력의 상징으로 불리는 소니는 왜 한국 기업인 안씨를 발탁하게 된 것일까.

소니는 지금 변혁 중이다. 도약과 몰락의 기로에 서 있다. 액정 및 PDP TV 사업에 뒤늦게 뛰어드는 바람에 타격이 컸다. 사운을 걸고 투자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은 예상 외로 부진했다. 결국 2년여 전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과 안도 구니다케 사장이 동시 사임하는 지경까지 몰렸다.

이후 새 경영진은 ‘소니 신화 부활’을 내걸고 신제품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덕분에 사세가 회복 기조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예전의 ‘워크맨’과 같은, 소니를 상징할 만한 대히트 상품은 아직 떠오르지 않고 있다.

거기서 소니가 미래에 먹고 살 핵심사업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솔루션 사업이다. 액정TV나 게임기 같은 가전 및 단품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이익을 창출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새로 설치한 ‘솔루션 사업부문’의 지향점은 시스템, 그리고 정보통신 수단 간의 ‘퓨전’이다. 그런 점에서 안씨의 경력과 실력은 소니에 매력적이었다.

정보기술(IT) 사업을 두루 꿰고 있는 데다 2003년부터 후지쓰 본사에서 아태지역 책임자를 맡아 보여준 발군의 글로벌 감각은 소니가 그리는 조직 리더십에 딱 맞아떨어졌다. 만년에 배운 일본어 실력도 한몫했다.

안씨가 맡은 솔루션사업부문의 중요 사업은 세 가지다. 유비쿼터스적인 솔루션을 기반으로 하는 소니의 최첨단 IC카드 ‘페리카’의 글로벌 사업 전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이용한 신규 비즈니스 창출, 디스플레이 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역시 관심을 끄는 것은 ‘페리카’다. 소니는 그동안 일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주로 사용되는 ‘스이카’ 등의 카드에 들어가는 칩을 만들어 팔아 왔다. 그러나 소니는 이를 별도의 소니카드로 발전시켜 ‘전천후 카드’로 보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단순한 교통카드 차원을 떠나 학교로 따지면 도서관 출입, 각종 증명서 발부 등을 카드 하나로 대체하고, 온라인 쇼핑이나 물건 구입 때 신용카드를 대신하는 용도로까지 쓰일 수 있게 솔루션을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전 세계 시장으로 확대해 ‘소니 페리카 카드’가 세계의 표준처럼 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그러나 안씨는 소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당장 본인이 몸담았던 삼성이나 LG 등 한국 업체들과의 본격적인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또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사업부문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점도 그랬다. 하지만 안씨에겐 특유의 도전정신이 발동했다.

“오히려 제가 소니의 핵심 간부로 올라서는 게 국내 기업들에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적으로도 50대 중반에 맞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고요.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이제 내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용광로에 집어넣고 전혀 새로운 작품을 창출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제 한국과 일본기업은 단순 경쟁의 시대를 넘어서 협력 보완의 관계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 소니의 중책을 맡아서도 한국과 일본 기업 간에 ‘윈-윈(win-win)’의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 안씨가 소니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어떻게든 한국의 이공계 기피 현상을 깨고 싶은 욕구도 자리 잡고 있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중에 어떤 세상이 와도 살아남는 것은 산업자본입니다. 결국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치를 창조하는 근원은 제조업, 즉 물건을 만드는 힘이에요. 나라의 경쟁력이나 부의 창출의 근간은 과학기술에서 비롯된다는 점으로 볼 때 이공계는 한국 사회와 기업의 뿌리가 돼야 합니다. 솔직히 나도 이공계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소니의 핵심 자리까지 올라서게 된 거죠. 그런 점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아, 이제 나도 노력하면 소니, 나아가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이공계로 진출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안씨는 지난달 28일 소니로부터 공식 발령을 받았으며, 12일부터 업무에 들어간다. 그는 소니코리아 회장을 겸직해 소니의 한국 관련 사업도 총괄하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