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칠레는 FTA 비준 끝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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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칠레 상원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휴가 직전 특별본회의까지 열어 비준안을 처리하는 칠레 의회의 모습은, 표에 혈안이 돼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한심한 우리 국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칠레가 협정 발효에 필요한 의회 절차를 마무리함에 따라 이제 협정의 성사 여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렸다. 비준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달 초 농촌 출신 의원들의 '육탄 방어'로 비준안 통과가 무산된 후 국회는 2월 초 임시국회를 열어 이를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로 볼 때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 정당 지도부와 의원 누구 하나 국회 통과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정치권에 협정은 관심 밖이고, 정부 역시 의원이나 농민을 상대로 "이대로 가면 죽는다"고 설득하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상태에서 국회가 열린다고 지난번과 달라질 것이 무엇인가. '농민당' 의원들이 다시 막무가내로 막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비준안 통과가 늦어짐에 따른 후유증은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칠레는 물론 중남미 시장 전체에서 한국 상품의 설 땅이 빠르게 줄고 있다. 만의 하나 협정이 '없는 일'로 될 경우 한국을 보는 세계 시장의 눈은 어떻겠는가.

금배지 더 붙이고 싶어하는 몇몇의 소아적인 욕심 때문에 나라 경제가 골병들게 해서는 안 된다. 다음달 초 비준안이 반드시 통과되도록 국회와 정부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 등은 소속 의원 설득에 나서야 하며, 정부도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농민들도 의원들의 비준 거부가 결코 농민을 위한 게 아니란 점을 알아야 한다. 비준이 늦어지면서 각종 농촌 지원이나 구조조정도 차질을 빚고 있다. FTA보다 충격이 큰 쌀시장 개방이 예정돼 있어 대응이 늦을수록 우리 농촌, 나아가 경제 전체의 피해는 커진다. 더 이상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지 않도록 FTA 비준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