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중기업계 자금사정 시설투자 몰려 수요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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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기도 의정부에서 비철금속 가공업을 하고 있는 중소업체 S社의 朴사장(43)은 지난주 평소 거래하던 강서구 화곡동의 K은행을 찾았다.
운영자금 5천만원을 대출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朴사장과 안면이 있는 은행 창구직원은『대출 여력이 없으니 다음달에 다시 한번 오라』고 말했다.
구정에 풀린 자금 환수와 물가 안정을 위해 돈줄을 죄는 바람에 요즘 중소기업들에 대한 신규대출이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朴사장은 동분서주한 끝에 가까스로 사채시장에서 어음을 할인받아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야 했다.
『지난달 하순부터 대출 받기가 갑자기 어려워졌습니다.거래지점으로부터 지급 준비금 때문에 본점에서 자금줄을 막아 당분간 중소기업 대출이 동결됐다는 말을 들었지요.』 경기도 반월의 중소기계업체인 H社의 林사장(59)도 최근 대출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소연 한다.林사장은 올초 경기가 풀릴 기미를 보이자공장에 자동화 시설을 들여 놓으려고 마음 먹었으나 사정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추진을 못하 고 있다.
중소기업들 대출 받기 어려운 것이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지만중소기업 사장들은 올해 경기가 모처럼 풀릴 기미를 보여 돈 쓸곳이 많은데도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워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 은행쪽에서는 돈줄이 막힌 것이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중소기업들을 다독거리지만 당장 자금이 궁한 업체쪽에선 불안하기만 하다. 『요즘 경기가 살아나자 4~5년간 개.보수만 해오던 대기업들로부터 설비투자자금 수요가 폭증하고 있습니다.이렇게 되니 금융계에선 신용도가 좋은 회사에 대출이 몰릴 수 밖에 없고 결국중소기업 입장에선 상대적인 자금시장 경색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D투자금융의 한 직원은 요즘 중소기업 자금난이 자금 수요가 몰리면서 생기는 상대적인 현상도 겹쳐 있다고 진단했다.
중소기업들은 돈을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 뿐만 아니라 은행들의대출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한다.
『은행들이 너무 빡빡해졌습니다.조금이라도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업종이나 회사는 일체 상대를 안합니다.』 경기도 파주의 봉제완구업체 M社의 경리부장은 은행들이 새로운 자체 신용도 지표를 작성해 대출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그는『은행 기준만으로 보면 돈을 안 써도 되는 기업은 지표가 좋고 급한 대출을 받아야 할 회사는 지표가 나쁠것 』이라며『결국 갈수록 대기업으로만 자금이 몰리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같은 현장의 자금난을 반영해서인지 최근 企協中央會에는 중소기업 공제사업기금 대출을 받으려는 업체들이 줄을 잇고 있다.
담보 보증이 필요없는 中企 공제사업기금은 올들어 2월까지 6백1억2천3백만원이 대출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가 늘어났으며 이달만해도 15일까지 1백67억원에 이르러 월중 최고치에 육박하고 있다.
외환은행 K지점의 대부담당 金차장은『은행의 수익성이 자꾸 악화되는 상황에서 수신도 보잘것없고 한계기업이 많은 中企 대출은갈수록 기피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에서도 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 의무대출을 줄이려는 방침을 세워 갈수록 중소기업들의 자금 구하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朴承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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