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의 영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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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술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프랑스 등 유럽의 영화인들은 흥행성만 앞세우는 할리우드의 영화들을 멸시한다. 그래서 영화흥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아카데미영화상이 미국의 영화예술아카데미라는 단체에 의해 시상되는 것조차 빈정대기 일쑤다. 그러나 작년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 의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가 공개됐을 때 유럽의 영화인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이것이 진짜영화」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유럽영화가 부끄럽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에 있어서 예술성과 흥행성이 일치되기 어렵다는 것은 정설처럼 되어 있다. 흥행성을 앞세우면 예술성이 떨어지고 예술성만 강조하다보면 재미없는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유럽의 영화인들이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경악했던 까닭은 흥행성과 예술성이 거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흥행의 천재다. 그는 이제까지 15편의 영화를 만들어 40억달러를 벌어들임으로써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영화제작자로 꼽히고 있다. 불과 열두살때 배우가 등장하는 8㎜ 영화를 만들면서 『반드시 영화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내비친 그는 30여년만에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나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영상화하는데 주력한 그의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한 만큼 예술성까지 주목받게 하지는 못했다. 세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번번이 문턱에서 탈락한 것도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을 법하다.
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것은 그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우들로부터 갖은 모욕을 받고 구타까지 당해야 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한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한이 그로 하여금 「흥행」이라는 왕관에나 「예술」이라는 장식을 얹어주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비롯한 7개 부문상을 휩쓸게 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은 그의 예술을 완성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화가 아직도 흥행성은 물론 예술성에 있어서도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혹시 영화인들의 한이 부족한 탓은 아닐까. 스필버그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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