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만은…” 치맛바람도 큰 문제(사립고 비리진단: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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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품주고 「약발」 없으면 협박까지/내신 올리려 “직업반에 옮겨달라”
상문고사태를 계기로 흉측스런 몰골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학비리가 비단 지각없는 재단만의 책임일까.
한때 수지맞은 장사였던 사학이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면서 초조해진 재단의 흑심도 치맛바람이라는 언덕이 없었다면 기댈 곳이 없었을 것이다.
서울 J고 3학년 2반 김모교사(38)가 최근 한 학부형으로부터 받은 전화항의는 「무슨수를 써서라도 내 자식만은…」하는 치맛바람이 예정과잉 차원이 아니라 병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학습능력이 워낙 뒤져 진학이 어려울 것 같은 학생 몇명을 직업반으로 보냈어요. 정작 해당학생들의 학부형은 가만 있는데 엉뚱한 학부형이 항의하더라고요. 자기 자식 내신 떨어지게 왜 그애들을 직업반으로 보냈느냐는 거예요. 속된 말로 기왕 버린 몸 잠자코 앉아서 남들 내신이나 올려주라는 식이죠.』
서울 S고 3학년주임을 맡고 있는 한모교사(43)는 더욱 황당한 경험을 해야 했다.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한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을 직업반으로 옮겨달라고 졸라대더라는 것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대학에도 가겠다는 학생인데 왜 그럴까 싶어 알아봤더니 직업반으로 옮겨 내신만 올리고 직업교육 시간에는 단과학원에 보낼 속셈이었어요.』
교사들에 대한 금품공세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내신성적은 치마폭에서 나온다」는 비아냥을 적어도 학부형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비아냥으로 흘려버릴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성의표시라며 교사에게 금품을 주고 「약발」이 먹히지 않으면 금품수수사실을 폭로할 것처럼 은근히 협박하는 학부형도 있는 판국에 돈봉투·선물꾸러미 따위를 달랑 건네주고 안도하는 학부형들은 오히려 순진한 편이라는 지적마저 있을 정도다.
새정부들어 불어닥친 사정바람·개혁바람을 타고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촌지없애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 6월 공보처가 전국의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무려 80%가 교사에게 돈봉투를 준 적이 있다고 답변한데서도 그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돈봉투를 내미는 학부형들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말 그대로 성의표시인 경우도 있고,남들 다 하는데 혼자 빠졌다가 자녀에게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는 불안도 만만찮아 어쩔 수 없이 내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교사가 학부모의 입장일 때 자녀의 교사에게 제대로 인사를 차리지 않으면 일반 학부모에 비해 「플러스 알파」의 괘씸죄가 덧붙는다는 공공연한 상식(?)은 교사와 학부모간 돈봉투 거래의 논리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대학을 못나오면 사람구실조차 하기 힘든 학벌위주의 사회풍토는 학부형을 비리의 유혹앞에서 고개를 함부로 가로저을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오성숙 정책실장(41)은 『못배운 사람,기능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괄시하는 사회풍토가 온존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느 부모인들 자녀의 성적을 좌우할지도 모를 일에 초연할 수 있겠느냐』며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나름의 적성을 살려 어깨를 펴고 살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치맛바람을 잠재우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번 상문고 사태는 동네북을 두들기듯 그 재단과 학교측에 종주먹대고 그칠 것이 아니라 검은 유혹을 뿌리치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맞장구치고 부추겨온 일부 학부형들에게도 뼈아픈 자성의 계기가 돼야 하고,내친 김에 학벌위주의 사회풍토에 일대 메스를 가하는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교사와 학부모간의 검은 거래라는 비정상이 마치 정상으로 착각되고,그 착각들이 쌓여 사회통념화된 잘못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자녀들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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