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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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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느 사회든 통계적으로 학력(學歷)높을수록 임금이 높게 나타난다. 고학력자는 높은 학력을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더 들였으니 임금도 더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채용하는 쪽에서는 학력이 높은 사람이 일도 더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임금을 더 준다. 학력과 임금 사이에 이 같은 상관관계가 유지되려면 많이 배운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학력과 능력이 대체로 비례할 때 ‘고학력=고임금’의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학력과 능력이 일치하지 않을 때다. 만일 고학력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기업은 학력에 따라 임금을 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학력과 능력의 비례관계가 완전히 무너지면 학력을 무시하고 능력만으로 임금을 결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분야에서 학력 파괴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직종에 따라서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아예 학력을 따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학력의 차이에 비해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큰 경우다. 경제학에선 이를 ‘학위 효과(sheepskin effect)’라고 한다. 학력에 비해 능력의 차이가 크지 않은데, 학위만 따면 임금이 훨씬 크게 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만연하면 자연히 고학력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도 학위 효과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방증일는지 모른다.

학력이 능력을 보증할 수 없음에도 기업이 사람을 뽑을 때는 여전히 학력을 따진다. 채용 단계에서 능력을 판별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업무 성격상 고도의 지식과 전문성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더 높은 학력이 요구된다. 연구직이나 대학교수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학위와 연구 실적을 채용 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의 학력은 학위 효과가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자격요건이다. 이런 분야의 학력 위조는 일부 연예인이 학력을 부풀린 경우와 전혀 다르다. 허위 학위로 대학교수가 됐다는 것은 가짜 운전면허증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범죄행위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다음달부터 학력검증 대행 서비스를 해주겠다고 한다. 기업이나 대학이 채용 후보자나 교수 임용 후보자의 학력을 문의해 오면 학위 취득 여부를 확인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가짜 학위로는 학위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취업도 어렵게 됐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