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극미의 형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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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기 4국 하이라이트6>
○ . 이창호 9단(왕 위) ● . 윤준상 6단(도전자)

장면도(115~130)=예상이 빗나가면 사고가 난다. 하지만 따뜻한 봄날 우박이 쏟아진다거나 잘나가던 주가가 대폭락한다거나 하는 일을 예상하긴 힘들다. 그걸 방심이라고 비난하기도 힘들다. 우하에서의 사건이 그랬다. 118부터 몇 수가 놓이더니 126에 이르러 수가 나버렸다. 흑집이라고 굳게 믿었던 곳에서 수가 나버렸다. 윤준상 6단의 충격은 컸다.

이제 '참고도' 백1로 움직이면 흑은 2, 4로 끊어 잡아야 한다. 언뜻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다시 5로 살아가는 수가 생긴다. 억울하다고 흑6을 손 빼면 백6이 선수다. 백도 당장에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까 흑이 먼저 이곳을 둘 수도 있다. 하나 예상에 없던 상당한 크기의 끝내기가 이곳에서 발생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이것이 전체 형세 판단에 엄청난-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윤준상 6단도 '느낌'은 있었다. 이곳 어딘가에서 뭔가 희미한 변화가 숨어 꿈틀대고 있는 것이 기분 나쁘게 감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 대마가 숨가쁘게 쫓기는 현실에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쪽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이창호 9단은 일단 130으로 우상귀를 살린다. 반상 최대의 이곳이 백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바둑은 극미의 형세로 변했다. 귀를 내줘도 A가 커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돌연 B의 큰 곳이 등장한 것도 계산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흑은 바둑이 시작되자마자 실리에서 크게 앞서나갔기에 '집 걱정' 따위는 해 보지도 않고 살아왔는데 어느덧 한 집에 목을 매는 긴급 사태에 직면하고 말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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