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沃씨 월간미술 초청 氣철학 예술론 강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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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의 화단은 썩어있다.그림과 돈이 오버랩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92년 여름 중국 明末淸初의 화가 石濤의『畵論』을 번역하면서 특유의 독설로 미술계를 몰아세웠던 동양철학자 金容沃씨가 평소 자신이 주창해온 氣철학 예술론을 밝히는 공개강연회를가졌다. 14일 오후7시 호암아트홀.『月刊美術』이 창간5주년 기념으로 특별초청한 金씨의 강연에는 일반은 물론 작가.미술관 큐레이터.미술대학 학생등 1천5백여명이 참석해 그의 예술론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강연을 준비하면서 金씨는『이 강연은 한 사상가의 압축된 사상을 일반에 직접 전달하는 이벤트로서 우리나라에 새로운 강연문화를 여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여러번 주최측에 밝혔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氣철학체계의 완성을 위해 다니고 있다는 이리 圓光大 한의과대학을 2주일간이나 빼먹으며 강연 준비를 해왔다. 金씨의 氣철학예술론의 키워드는「氣韻生動」.5세기 齊나라사람인 謝赫이 그림을 품평하면서 내놓았던 여섯가지 기준 가운데가장 첫번째로 꼽은 말이다.金씨는 지난 86년 쓴『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새로운 한문해석학을 제시해 학계 에 새바람을 몰고왔던 고전학자답게 이 말을 이제까지 나누어 해석해온 것과 달리『그림은 기운이 생동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어와 술부로 해석했다.
金씨는 이어 동양예술의 핵심적 평가기준인 이 말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시대사상에 따라 각기 달리 해석되는 바람에 오늘날 동양화정신의 피폐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金씨는 특히 宋代에는「기운생동」이 新儒學의 영향으로 윤리적 명제로 해석돼 마치 화가가 배워서 익힐수 없는 천부적 자질로 여겨졌으며 淸代에는 산수화의 품평기준처럼 여겨져 윤곽선 없이 그리는 몰골법을 위주로 먹을 번지게해 구름이나 안 개를 그리는것을 기운생동으로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했다.기운생동의 원래 어의를 설명하면서 金씨는 동양고전철학.갑골학.문자학.동양미술사등특유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수십장의 슬라이드자료를 보여주기도 했다.그는 사혁이 말한 기운생동 은 仰韶문화의 채색토기에서부터 갑골문.한대 벽화.長沙 馬王堆출토 비단 그림등에 이르기까지 신화적 그림이나 인물화의 품평기준이 돼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기운생동은 형체를 충실하게 옮기는 形似에서 출발해 거기에 氣가 살아있게 그린 것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金씨는 동양미술이 서양미술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氣철학에 바탕한 기운생동의 동양예술관이 19세기까지 이상적인 외형적 묘사에만 매달려온 서양미술보다 미학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그러나 金씨는 칸트에서 시작돼 크로체.존 듀이 .화이트헤드에 이르는 근.현대 서양철학자들의 미학적 성찰이 마침내 5세기에 완성된 동양의 기운생동 정신을 따라오게 됐다며 20세기이후서양미술이 동양미술을 압도하게 된 이유를 철학적.미학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金씨는 마지막으로 우리 화단의 현실을 거론하면서 『요즘 氣韻을 따른다는 비구상작업들은 기초가 부실한채로 억지로 흉내만 내보이고 있다』며 石濤가 그의 화론에서 말한 것처럼『한획을 긋더라도 전우주와 맞서는 듯한 진지한 자세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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