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독서실>가족은 반사회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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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안정과 보호의 상징인 가족은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 보면 오히려 반사회적 특성을 갖는 기구일 수 있다.
가족제도는 부와 빈곤을 세습시키며 사생활권이라는 미명 아래 그 담장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을 은폐하고 개인의 개성과 인권을 억누르고 있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가사노동에 여성을 묶어두는 것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가족은 사랑과 모성애,휴식의 공간,직장의 조직논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내면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으로신비화되고 있으며 이같은 이데올로기는 매스컴.학교제도.결혼제도.법률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사랑과 보호에 대한 기대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들을 가족제도가 독점함으로써 가족의 역할은 신성화되는 반면 사회는 그러한 가족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대항해야 할 황폐화된 어떤 것으로격하되고 있다.
그나마 그러한 보호와 사랑의 역할도 특정계층이나 특정 형태의가족들에게만 가능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체가족의 모습이그러한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
가족은 무조건 바람직한 것이라는 호소력은 여성해방론자와 사회주의자 같은 소위 진보적 사회집단의 가족이론 정립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그 결과 두 이론 모두에서 무비판적으로 대중감정 영합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가족은 한편으로 생계의 단위,경제적 단위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의 논리만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는 사회기구다.
가족의 변화를 위해서는 가족이 처한 경제적 조건을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분석하고 대안적 가족관념을형성해 가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가족관련 사회보장 제도나 주택정책,이혼시의 양육문제,가족법 등 제도적.정책적 차원의 변화전략과 독신.생활공동체.동성가구등개인적 선택의 다양성을 통한 변화라는 두가지 차원의 대안이 함께 중요시돼야 한다.
영국 런던 시티대학의 미셀 바렛,에식스 대학의 매리 매킨토시등 사회학과 교수 2명이 썼고 이화여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의 김혜경씨가 옮겼다.〈여성사.2백쪽.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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