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봉천 5동 사회복지 전문요원 李晶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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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삶이 고달픈 사람들이 서울에서 가장 많이 모여사는 봉천5동「달동네」.주민 거의가 무허가 판잣집에 살고 있는 이 산동네 사람들에게 한 「신세대 처녀」의 정성어린 보살핌이 따뜻한 위안이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달동네의 이쁜이」「외로운 노인들의 손녀딸」로 불리는 그는 바로 봉천5동사무소 사회복지전문요원 李晶姬양(25).
젊은이들이 일을 떠나 노약자만 남은 한낮에 거동조차 할수 없어 홀로 갇혀지내는 노인들을 찾아 깎아지른 산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李양의 생김새는 발랄한 신세대.
그러나 노인들을 위해 쌀을 배달하고 병원을 안내하는가 하면 외로운 노인들의 신세한탄에 함께 눈물짓는 그의 마음씀씀이는 요즘의 신세대像과는 거리가 멀다.
『외부환경이 열악해 한 개인의 삶이 뒤처졌다해서 경멸하거나 도외시하지 말아야 합니다.』91년 梨大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사회복지전문요원(지방 별정직 7급)시험에 응시,그해 7월부터 신림동 현장에 배치됐던 그가 사정이 보다 열악한 이곳으로 온 것은 지난해 1월.
총 5천6백여가구가 산비탈에 게딱지같은 판잣집을 짓고 사는 재개발지구 봉천5동은 주민의 70%가 무허가 주택에 살면서 막노동과 파출부.공원으로 일해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李양이 하는 일은 이곳의 생활보호대상자들을 돌보는 일.
부양가족이 없는 고령자나 장애자,부모없는 아동등 거택보호세대34가구,취로사업현장에 투입돼 생계비를 해결하는 1백95가구사람들이 그가 돌봐야할 대상들이다.
누가 도움이 필요한지 가가호호 방문으로 알아내는 일,쌀.보리등 식량(1인당 한달에 쌀 10㎏ .보리 2.5㎏)을 직접 방문해 전달하고 부식비(하루 8백40원).연료비(하루 4백50~7백20원)등을 부쳐주는 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부축,병원에 동행하고 여타 사회복지기관을 수소문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뛰어다니는 일도 李양의 몫이다.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의 거적같은 무허가 움막방한칸을 2백만원에 빌려 살고 있는 趙이동할아버지(82)는 부인과 아들이 죽고 며느리는 도망가 30년째 혼자 살면서 요즘도쓰레기등을 줍는 취로사업(일당 1만3천원)에 나가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상태.
趙할아버지는『귀한집에서 곱게 자란 李양이 쌀배달을 하느라 끙끙거리는 걸 보면 안쓰럽다』며『안보일때는 손녀딸처럼 보고 싶어진다』고 그의 손을 잡았다.
연탄가스냄새가 진동하고 대낮에도 밤같이 어두운 이 움막 한켠을 역시 빌려쓰고 있는 金진수할머니(68)는 젊은이들도 오르내리기 힘든 이 비탈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뼈가 부러져 지난해 2월이후 집안에 갇혀지내는 상태.
金할머니는 옆방 趙할아버지가 반찬거리를 대신 사다주면 간신히밥을 지어먹을 정도라며『올봄에는 봄볕을 쪼이러 나가고 싶다』며울먹였다.
金할머니는 40년전 남편이 바람이 나 아들과 함께 새 부인을얻어 집을 나간이후 뜨개질과 파출부로 생활해 왔으나 지금은 이또한 불가능한 처지가 됐다.
『그동안 부모와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갚으려면 이 정도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는 李양은『노인들에겐 보다 넉넉한 지원을,자라나는 아동들에게는 이 세상을 힘차게 살수 있는 자활의지를 북돋워주는 배움의 기회가 더많이 주어졌으면 좋겠 어요』라고조심스럽게 말했다.李양은 그자신 밝히길 꺼리는「부유한 가정」의2녀중 장녀.
〈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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