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바둑산책>강해진 여성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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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여성 1명을 가르치는 것은 남성 10명을 가르치는 것보다 보람있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여성이 바둑을 두면 자연스럽게「바둑가정」을 이루게 된다.부부간의 갈등이나 청소년문제는 모두 대화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법인데 한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정겹게「手談」을 나누면 서로 눈빛만 봐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수 있어 절로 뜻이 통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바둑가정은 화목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듯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청소년은 사회에 나가서도 모범적이므로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사회가 밝아지면 국가 또한 발전한다는 얘기다.물론 바둑가정에서 李昌鎬같은 천재기사가 배출되는 성과를거두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바둑문화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라도 여성바둑의 저변이 넓어야 한다.그러려면 우선 여성프로기사의 층이 두터울 필요가 있다.필자는 일찍부터 그점을 강조하고 여학생들에게 바둑을 지도하는등 미력이나마 힘을 쏟아왔다.
갖은 반대를 무릅쓰고 75년 대한기원시절「여성프로입단대회」를열어 한국바둑사상 최초로 尹希律.趙英淑 두 여성프로기사를 탄생시켰고 83년에는「전국 여학생바둑대회」를 열었으며 고려투자금융(동아증권前身)여성바둑팀을 창단해 감독을 맡기도 했다.
90년에는 뜻과 능력을 겸비한 여성바둑인이 「한국여성바둑협회」의 설립을 추진,거의 성사단계여서 雙手를 들어 환영했으나 한국기원측 외부인사 한두명의 권위주의에 막혀 그 멋진 사업이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여성바둑협회」가 탄생하면 바 둑계는 물론한국기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건만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여성강자들끼리만 대전해 2명을 선발하는 「여성프로입단대회」도15년간 중단되었다가 90년 가까스로 부활되었다.『남자프로에게석점바둑이 무슨 자격이 있느냐』는 강한 반대때문이었다.『그러나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듯 제도가 확립되고 ,여건이 성숙해지면 강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외로운 주장은 좀처럼 먹혀들지않아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서 모처럼 부활된 「여성입단대회」가 계속되고 중국여류名人 황옌(黃焰)5단이 두번씩 다녀가고,루이네웨이(芮乃偉)9단의 활약에 자극받고,두개의 여성프로기전(EBS盃.여류國手戰)이 생기자 여성프로기사의 수준이 눈부시게 향상되고 있어 감격적이다.
최근 여성기전 2冠王으로 등극한 尹暎善초단(동덕여고2.16세)이 배달왕기전에서 鄭大相5단.金聖勳4단.金榮桓3단을 연파하는돌풍을 일으켜 화제다.마침내 한국여성프로바둑이 본궤도에 진입한인상이다.
2년전만해도 南治亨초단(서울대영문과1.18세)이 단연 최강이었으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어릴때부터의 변함없는 꿈』이라는 그가 대학입시에 몰두하는 동안 신예 尹暎善이 추월해 버린것.尹暎善이야말로 여성기사의 선두주자이며 「여성 李昌鎬 」라해도 과언이 아닐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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