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관요청 응급환자 수송중 사고 호소길 없는 시민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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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찰관의 요청에 따라 교통경찰관의 보호속에 응급환자를 태우고 가다 일어난 사고를 운전자 혼자 책임져야 한다면 어느 누가길거리에서 교통사고 당한 환자를 태워주려 하겠습니까.』 국가를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소식을 들은 韓모씨(39.서울공릉동)는 그럴줄 알았다면서도 몹시 허탈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경영하는 카센터 종업원이 경찰관 요청으로 응급환자를 태우고 가다 택시를 들이받는 바람에 피해자에게 4천1백만원을 물어준 韓씨는『억울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사회가 더욱 삭막해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韓씨에게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90년4월.
종업원 金모씨(당시 34세)가 손님이 수리를 맡긴 승용차에 칠을 입히기위해 차를 몰고 도장전문업소로 가던중 경찰관이 교통사고로 다쳐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 어린이(당시 7세)를 데리고 차를 잡지 못해 발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차를 세운게 화근이었다. 『비상등을 켜고 병원으로 갑시다.』 경찰관은 이 말과함께 속도를 내라며 호루라기를 불고 손을 내밀어 흔들며 다른 차들의 양보를 유도했고,金씨는 차의 비상등을 깜박이며 신호를 위반해 교차로에 들어서다 좌회전하던 택시와 충돌한것.
이 사고로 경찰관은 조금 다쳤으나 택시승객 崔모씨가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어 운전했던 종업원 金씨는 구속됐다가 벌금 3백만원을 내고 석방됐다.
그러나 승객 崔씨가 택시회사와 카센터 주인 韓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바람에 韓씨는 3년간 송사에 휘말리다 92년 崔씨에게 4천1백만원을 지급해야만 했다.
韓씨는 이 뿐만 아니라 부서진 손님차량을 바꿔주는등 모두 8천여만원의 손해를 봤다.
생각다 못한 韓씨는 『金씨가 경찰관 요청에 따라 응급환자를 태우고 가다 사고를 냈으므로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며 자신이 이미 낸 사고보상금을 국가가 되돌려 달라는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으나 1심에 이어 19일 2심에서도 패소한 것.
1,2심 재판부 모두『경찰관이 金씨에게 신호나 속도를 위반하라고 지시하지 않은 이상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밝혔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경찰관도 직무에 충실하려 했고,비록 신호를 위반한 잘못은 있었지만 金씨도 어린아이를 빨리 병원에 데려다주려던 것 뿐인데….』 그러면서도 韓씨는『선의로 한 일의 대가가 너무 큰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李殷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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