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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왈’(土土曰) 선생님의 쾌유를 빌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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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02면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이 즐겨 나가는 모임을 소개해 주셨는데 귀가 솔깃하더군요. 이름 하여 ‘안티 공구리’라나요. ‘공구리’는 나이 좀 든 분들만 알 만한 단어인 데요. 콘크리트의 일본식 발음으로 순화 대상 용어입니다만, 콘크리트와 공구리는 엄연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공구리에서는 해묵은 단단함의 중량감이 더 묵직하게 온다고 할까요.

순화동 편지

‘안티 공구리’는 말 그대로 우리 삶을 뒤덮은 모든 콘크리트, 또는 콘크리트 같은 것에 반대해 깨버리자는 의지 를 드러낸 이름입니다. 여기서 공구리는 그야말로 여러 갈래로 퍼져 나갑니다. 이를테면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도 공구리의 하나라 할 수 있겠지요. 학벌처럼 견고한 공구리가 또 있을까요.

학력 위조 얘기로 저잣거리가 시끄러운 요즈음, 서울 삼청동 리씨갤러리에서 28일까지 열리는 조촐한 전시회 하나가 미술계의 ‘안티 공구리’ 구실을 해 훈훈한 얘기를 풀어놓고 있답니다. ‘맑고 격 있는 이규일 수장 청완(淸琓) 작품전’입니다.

이규일(李圭日) 선생은 그 한자 이름을 파자(破字)해 때로 ‘토토왈(土土曰)’ 선생님으로 불리는 미술 동네 원로이신데요. 칠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만년 미술기자를 자부하는 분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와 민중서관 편집사원을 거쳐 나이 서른에 신문기자가 됐다네요. 뒤늦게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부족한 학력이나 이력은 아랑곳없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 한국 신문사상 거의 첫 미술전문기자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신문사를 그만둔 뒤에는 미술 전문지를 창간해 못다 한 미술 사랑의 꿈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이규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픈 마음을 추스르며 꾸렸습니다. ‘토토왈’ 선생이 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저절로 모여들어 만든 것이랍니다. 이름에 땅 자가 둘 있어도 땅 한 평이 없던 선생은 평생 봉급쟁이로 모은 목돈마저 미술 잡지 만드는 데 쏟아 붓고 난 뒤에야 큰 병이 든 걸 아셨다는군요.
평소 ‘토토왈’ 선생의 성품을 알던 화가 몇이 그림을 내놨습니다. 또 그에게 신세를 졌던 화랑 몇은 기꺼이 작품을 사기로 했답니다. 한국 화단의 현장을 기록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토토왈’ 선생이 늘그막에 처음으로 그 자신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시네요.

미술기자 시절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시리즈에 이당 김은호의 ‘서화백년(書畵百年)’, 월전 장우성의 ‘화맥인맥(畵脈人脈)’ 등을 연재해 화제를 모았던 그가 이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을 쓸 차례입니다. 빛나는 학벌은 없어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쌓은 끈끈한 인간애가 ‘토토왈’ 선생의 가장 막강한 인간 이력서랍니다.
‘안티 공구리’를 온몸으로 밀고 나온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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