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푸는역시] 유길준 한국인 최초 미국 유학

중앙일보

입력 2007.08.17 05:02

업데이트 2007.08.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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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882년 미국과 수교를 체결한 이듬해 미국 공사 후트가 내한하고 조선의 친선사절단(보빙사)이 미국에 파견된다. 이 사절단은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홍영식·서광범·유길준(사진)·고영철·변수·현흥택·최경석 등으로 구성되어 1883년 7월 인천항을 출발했다.

보빙사 일행은 그해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했다. 기차편으로 뉴욕에 도착한 후 40여일간 미국에 체류하며 미 대통령을 접견하고 각 기관을 두루 시찰한 후 귀국했다.

이들 중 유길준은 미국에 계속 남아서 국비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유길준이 한국인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된 셈이다. 이에 앞서 유길준은 한국인 최초로 일본에 유학하기도 했다.

유길준은 메사추세츠 셀럼시에서 에드워드 모오스 교수의 지도하에 유학준비를 하며 지내다가 1884년 가을학기(Senior)부터 당시 명문으로 알려진 거버너 담마 아카데미(Governer Dummer Academy)에 들어간다. 그런데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은 1884년 12월 4일 고국에서 갑신정변이 일어난다.

정변의 주역은 유길준의 선배이자 동료인 김옥균·홍영식·서광범 등이었다.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실패하면서 정변의 주역들로부터 유길준에게 전해지던 유학비도 끊어지자 그는 더 이상 미국에 남아있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으로 진학할 계획까지 갖고 있었으나 갑신정변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신정변은 미국 대학의 첫 졸업생을 낳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유길준과 함께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갔다 돌아와 있던 변수는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는 1887년 메릴래드주립농과대학에 입학해 4년 뒤인 1891년 6월 이학사(Bachelor of Science) 자격을 취득했다.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취득한 미국대학의 졸업장이었다. 콜롬비아 의과대학(Columbia Medical College·현 조지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서재필보다 2년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졸업한 지 겨우 4개월 뒤 그만 모교 앞에서 열차에 치어 사망하고 만다. 

윤병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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