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야 할 수도권 개발(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건설부가 입법예고한 수도권 정비계획법 시행령 개정안은 서울시내에서 과밀부담금만 내면 어떤 규모의 대형건물도 신축을 허용하고 있다. 수도권 인구·경제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초대형 건물의 신축을 가급적 억제하던 종전까지의 시책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도 대형사옥을 짓겠다는 일부 기업의 의도가 수도권 정비방침에 따라 좌절된 경우가 많았다.
건설부가 수도권 개발억제 방침에서 사실상 개발촉진 방침으로 급선회한 배경은 일단 수긍이 간다. 수도권 인구집중 억제시책은 사실상 말 뿐이고 실제로는 인구와 경제집중이 심화되기만 한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이번 개정안은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수도권은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전체인구의 44%,기업체의 57%가 몰려있는 지역이다. 때문에 이 지역에 가해지는 온갖 개발규제가 오히려 비합리적으로 경쟁력 약화의 요인이 된다는 지적은 옳다.
수도권,특히 서울은 지금 도시의 평면 확산이 한계에 부닥쳤다. 앞으로는 입체화에 의한 토지사용의 고도화만이 도시로의 기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되고 있다. 이의 필요성을 무시하면 도시는 끊임없이 녹지를 잠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환경유지에 중대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하다. 따라서 수도권에서 개발권역과 행위허용을 확대한 것은 불가피한 방향전환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방향전환은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이제 수도권 개발억제의 가면을 벗고 개발촉진의 진면을 드러낸 이상 그것이 전체적인 국토계획과 조화를 이루어야할 필요성은 더욱 강해졌다. 과밀부담금만 내면 어떤 대형건물이라도 신축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은 이 점에서 매우 돌출적이다. 모든 건축허가를 신고제로 하겠다는 발상처럼 주변 관련시책과 동떨어지게 나타난 시책은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하기 쉽다.
대형건물이 들어서려면,또 개발이 유보됐던 지역에 공장을 지으려면 환경·교통영향평가가 필수적이다. 주차장만 짓는다고 교통영향평가가 필수적이다. 주차장만 짓는다고 교통영향평가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입체화를 수용할 새 도로가 종전보다 넓게 건설돼야 한다.
건설보유지역이 촉진지역으로 바뀌려면,또 공원과 녹지대 건설이 새로 추가돼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다. 특히 상·하수도망과 하수처리·산업폐수처리시설 등 대공해시설이 반드시 병행해 건설돼야 한다.
수도권정비법 개정안이 이런 모든 국토계획이나 건설관련 법규와의 사전 조정없이 추진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될 수도 있다. 입법예고기간을 길게 잡고,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국토이용은 항상 미래를 내다보고 신중히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원칙도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
이대로는 수도권의 정비는 커녕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