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늘린다고 정책정당 되나/이상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김영삼대통령은 올 한해를 「일하는 해」로 삼자고 호소했다. 우리가 국제적 무한경쟁에서 능히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소모적인 정쟁을 청산하고 정치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 또한 더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역설했다.
김 대통령은 그래서 민자당 전당대회를 연기토록 했다. 또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여러가지 대화를 나눴다. 국가경쟁력 강화는 바로 국력결집·국민통합 없이는 어렵다는 점을 널리 알리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민자당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있는듯 없는듯 처신해왔던 김종필대표가 직접 경제단체장 등 민간과 만나 고정을 청취중이고 사무처·정책위도 변신을 위해 제법 노력하는 기색이다.
김 대표를 비롯한 고위당직자들은 특히 계파간 이질감 해소와 당의 단합·결속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당력을 총결집해 생활정치·실사구시 정치구현에 앞장서는 정책정당으로 재탄생하겠다는 각오인 것이다. 만시지탄의 느낌이나 바람직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실천이다.
지금 당에는 해박한 지식과 높은 경륜,귀중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국제화·개방화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이들은 현재 버려져 있는 상태다. 당직자가 아닌한 자신의 지혜와 역량을 전혀 발휘할 수 없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원 가운데도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소일거리를 찾지못해 하는 일 없이 빈둥대거나,잡사로 시간을 때우는 이들이 허다하다. 자꾸만 냉소적으로 변해가는 의원들도 불어나고 있다.
일을 하라니까 기구만 늘리고 있다. 국제경쟁력이 유행어가 되니 당에 국제경쟁력 강화특위를 또 만들었다. 당은 이미 만들어놓은 사회개혁·경제특위를 거의 가동하지 않고 있다. 민생과 관련한 사회·경제문제가 마구 쏟아지는데도 당특위는 지난해 9월 정기국회 개회이후 줄곧 휴면중이다. 이런 마당에 또 무슨 기구를 만들겠다고 선전하는게 우습게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경영학에 시너지(Synergy:상승작용) 효과라는 말이 있다. 분산상태에 있는 집단·개인을 한데 통합하면 「모기 천이 모여 천둥소리를 낸다」는 말처럼 단순한 더하기 이상의 효과가 나온다는 학설이다.
정책정당을 골백번 외치더라도 이런 점에 눈뜨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구호의 실현은 백년하청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