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서 배워야"… 제2 히딩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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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히딩크'.

로버트 알버츠(50.사진) 한국 청소년축구대표팀(17세 이하) 신임감독은 여러 모로 거스 히딩크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과 닮은꼴이다.

히딩크 감독처럼 네덜란드 출신에 선수 시절을 무명으로 보냈고,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이름을 알렸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두 사람이 닮은 부분은 축구철학이다.

"선수 스스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즐기는 축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15일 파주 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알버츠 감독은 주저없이 이렇게 말했다.

알버츠 감독이 12세 때 처음 입단한 팀은 유스(유소년) 시스템에서는 세계최고로 꼽히는 네덜란드 아약스. 그는 훈련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고, 결과보다 발전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 아약스 유스 시스템을 통해 축구의 즐거움을 배웠다.

2002년 초 지도자 강사(코치 인스트럭터)로 한국에 온 그는 지난 2년간 수많은 한국 지도자와 토론하면서 한국 유소년 축구의'아킬레스건'을 봤다. 바로 결과에 집착하도록 만드는'토너먼트'제도였다. 한번 지면 끝나는 토너먼트제에서 선수들에게 축구를 즐기라는 것은 사치였다.

목표 접근방식에서도 '제2의 히딩크'다.

"먼저 분명한 목표를 정하면 컨디션이 목표 시점에서 1백%가 되도록 해야 한다. 윤덕여 전임 감독의 청소년팀이 이탈리아(그라디스카컵)에서 명문 팀들을 꺾고 우승했지만 정작 세계대회에서는 참패했다. 목표 이전에 컨디션이 최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준비 과정에서 패배를 맛보지 않으면 실수를 통해 얻는 교훈이 없다고 했다. 이것도 '히딩크 방식'이라고 했다. 히딩크가 월드컵을 준비하는 동안 참패를 당하며 얻은 교훈이 좋은 결과의 밑거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자신이 구사하고 싶은 축구 스타일도 기본은 히딩크와 같다고 했다.

"히딩크 축구가 전형적인 네덜란드 축구는 아니지만 공격 지향, 압박 플레이 등 기본은 네덜란드 식이었다"며 자신도 강한 압박과 공격 축구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는"신체 조건보다는 스피드가 중요하다는 게 월드컵에서 분명해졌다. 빠른 속도에서 공을 컨트롤하고, 공.수 전환도 빨라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점에서 좀 떨어진다"며 그 해결이 자신의 과제라고 했다.

한국 청소년팀으로서는 처음 맞는 외국인 감독인 그는 1992년 말레이시아(케다)부터 2001년 싱가포르(홈 유나이티드)까지 9년 연속 리그 최우수감독상을 받아 동남아권에서는 명장으로 통한다.

지난해 기술위원 재계약을 앞두고 동남아 팀에서'러브콜'이 쏟아졌지만 세계대회에 갈 수 있는 한국을 선택한 것도 히딩크를 쏙 빼닮았다.

파주=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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