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 김영대 회장 운전기사 40년 … 정홍씨 자서전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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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홍씨<左>가 2000년 김영대 회장과 경상남도 외도를 방문해 찍은 기념 사진.

대기업 회장의 운전기사 생활을 자서전으로 펴낸 이가 있다. 김영대 대성 회장의 업무용 승용차 기사인 정홍(65)씨다. 직함은 차량관리과장. 그는 김 회장의 기사 생활 40년을 『네 바퀴의 행복』이란 책으로 펴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대성에 입사해 40년간 오로지 한 사람만 보필한 직장생활, 그리고 여기서 찾은 우정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다.

14일 서울 관훈동 대성 본사에서 만난 정씨는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성실하게 일해서 남부럽지 않은 노후를 보내게 된 인생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개들 퇴직할 나이에 일하고, 자식들(1남3녀) 모두 대학에 보내 결혼시켰으니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에 정년을 맞았지만 김 회장의 권유로 지금까지 일한다. “회장은 70살까지 하라지만 누가 될 것 같아서…”라며 웃었다.

정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향인 경북 예천에서 초등학교 4년까지 밖에 다니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23세 때 경북 문경 대성 탄좌에 트럭 운전기사로 들어갔다. 25세이던 1967년, 당시 상무였던 김 회장의 전담기사로 발탁됐다. 간부들이 그의 성실성을 보고 천거한 것이다. 처음엔 창업주의 젊은 아들을 가까이 접하는 일이 거북했다. 동갑내기 재벌 2세에게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더 조심이 됐다. 충남 대천사업소에 들렀을 때의 일. 정씨가 허름한 방에 묵게 되자 “이런 방에서 어떻게 잡니까. 다른 방 없나요. 방 없으면 내 방과 바꾸세요”라고 말하는 김 상무에게 감동했다. 2002년에는 둘 다 환갑을 맞았다. 김 회장이 자신의 해외여행 기간에 맞춰 정씨의 환갑 여행을 준비해 주었다. 여행지는 서로 달랐지만 같은 기간에 회장과 운전기사가 동시에 환갑여행을 떠난 셈이다.

정씨는 “운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번 책으로 엮어볼까 하는 생각이 10년 전쯤 문득 들었다”며 “김 회장의 다음 일정을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며 틈틈이 메모한 걸 다듬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 나가서도 운전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다. “외국인이 한국에 올 때도 공항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은 대개 운전기사”라며 “긍지를 갖고 깨끗하고 깍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정씨는 김 회장과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정씨가 요로결석에 걸렸을 때 돌이 빨리 빠지라고 맥주를 사들고 단칸방을 찾아오곤 했다. 그에게도 ‘주인의식’이 있었기에 회장과의 우정이 가능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사 제품을 홍보했다. 그동안 대성이 지은 아파트를 열 채나 팔았다. 그의 자가용 트렁크에는 대성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늘 넣어가지고 다닌다. 골프장의 석유 납품 거래를 트는가 하면 동네 집집마다 대성쎌틱보일러를 놓게 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도 오전 6시에 일어나 6시30분이면 서울 동소문동 김 회장 집에 도착한다. 직원들보다 1시간 반 일찍 출근해 공부하는 게 평생 습관인 회장을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정씨에게 “다음 세상에선 꼭 친구로 만납시다”라고 말하곤 한다. 출판기념회는 17일 오후 6시 대성 본사에서 열린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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