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료 받는 '황당 골목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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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료를 내야 다닐 수 있는 황당한 골목길이 등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골목은 대구시 서구 평리6동 434-45와 434-55 두 곳. 이 두 골목을 끼고 있는 주택 8채의 20여 가구 주민들은 요즘 골목길을 이용하려면 통행료를 내라는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한 달 전쯤 '골목길 주인' 김모(42)씨로부터 '골목길 통행료'를 청구하는 내용증명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김씨는 내용증명서에서 '평리동 434의 45 골목길 42㎡는 민법에 따라 통행에 따른 사용료를 지불할 의무가 주민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또 '지목(地目: 토지의 종류를 구분하는 명칭)은 도로이지만 건축물만 금지돼 있지 사용료 청구까지는 금지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최근 주민들을 찾아와 "구청으로부터 경매를 통해 이 골목길을 샀으니 통행하려면 앞으로 통행료 월 2만원을 내라"고 통보했다. 김씨는 "통행료를 내지 않으려면 땅을 살 때 들어간 취득.등록세를 고려해 취득가의 2배인 1600만원에 주민들이 골목길을 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주민들이 거부하면 통행료 확보를 위해 법원에 주민들 재산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말도 안 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김씨는 13일부터 자신의 차를 골목길 한가운데 주차시키고 주민의 통행을 방해하면서 갈등은 깊어지고 있다.

이 골목길이 김씨 소유가 된 사정은 이렇다. 골목길이 있는 평리 6동 일대는 1990년까지 밭이었다. S건설은 90년에 이 일대를 사들여 개간한 뒤 주민에게 분할 매각했다. 주민들은 이 곳에 집을 지었다. 그러던 중 97년 외환위기로 S건설이 부도 처리되면서 세금을 체납하자 서구청이 올 2월 S건설 명의로 있던 골목길 2곳을 공매에 부쳤다. 김씨는 골목길을 800여만원에 사들였다. 서구청은 땅 주인이 소유권을 행사해 통행료를 징수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판단이다.

주민 이모(59)씨는 "17년간 별일 없이 살다가 갑자기 통행료를 내놓으라니 말이 되느냐"며 "구청이 주민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골목길을 공매를 부쳐 이런 황당한 일이 생겼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구청에서 골목길을 다시 매입한 뒤 공용도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주민에게 골목길을 공매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려 주지 못해 문제가 생겼다"며 "곧 조정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공매=개인 또는 법인이 세금을 체납했을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세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을 공개 매각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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