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 협상 실무주역 2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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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산업경쟁력 있어야 협상유리 절감”/박운서 상공자원부 제1차관보
『농산물에 가려 우루과이라운드(UR)에서의 다른 중요한 협상을 언론이 너무 소홀하게 여기는 것 아닙니까.』
공산물 협상의 실무총책인 박운서 상공자원부 제1차관보가 거침없이 털어놓는 불만이다. 「쌀 때문에 혹시 공산품쪽에서 뭘 내주지 않나」하는 의심은 잔뜩하면서도,정작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산물 협상과 연계해서 정말 준 것이 없는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공산물 시장개방 분야의 한미 양자회담은 5차까지 끌어가며 씨름을 벌였다.
미국과 유럽공동체(EC)가 맞붙은 석유부분의 관세인하 문제에서는 우리가 EC에 동조하는 바람에 미움까지 샀다.
내가 맡은 싸움도 버거운 판에 누굴 봐주나.』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무세화 부문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약한 건설장비·의료장비·농업기계 등이 무세화 유예기간을 최대한 늘리는 일을 꼽을 수 있다. 정말 미국측은 집요했다. 간신히 10년을 끌어냈다.』
­공산물 안에서의 바터는 없었는가.
『협상인데 왜 없겠는가. 수산물·오일시드·의약품·맥주·증류수 등의 관세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부분의 관세를 더 내린 경우가 더러 있었다. 결국 농어민 소득과 관련된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했다.』
­협상과정에서 잘 풀린 일도 있었을텐데.
『한국도 옛날의 한국이 아니다. 철강·조선분야의 협상에서는 미국·일본·EC와 함께 G4에 속한다. 한국이 결정권을 쥐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번 협상의 경우 반도체 분야에서도 관세율을 내리는데 한국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아주 흐뭇했다. 결국 산업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협상력도 자연히 강해진다는 것을 절감했다.』
­UR의 타결이 한국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리라고 평가하는가.
『7대 3으로 유리하다고 본다. 수출여건이 좋아졌으니 문제는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여하히 키워나가느냐에 달렸다.』
­정부의 수출보조금이 대폭 규제당하게 됐는데.
『수출산업 설비금융 등 손질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어차피 경제체제로 가야 한다.』<제네바=이장규특파원>
◎“최선 다했지만 농민들엔 죄송할뿐”/김광희 농림수산부 제1차관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불안해 할 농민들을 생각할 때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또 농정에 계속 몸담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한미 농산물 실무협상의 주역인 김광희 농림수산부 제1차관보는 마라톤협상에 따른 피로도 채 가시기 전에 걱정이 태산이다.
쌀시장 개방협상에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하는 그이지만 농민들의 「불안감과 분노」가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과 실무협상은 모두 몇차례나 했나.
▲쌀시장 개방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두차례,쇠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전체협상 여섯차례 등 모두 여덟번이다.
­협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쌀시장 개방과 관련,미국이 『우리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다해도 이를 다자협상에서 이해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중간에 흔들릴 때 괴로웠다.
또 『쌀에 대해서 한국입장을 들어줬으니 너희들도 뭔가 좀 내놔라』고 하면서 이른바 「패키지협상」을 제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쌀외에 가장 관심을 가진 농산물분야는.
▲쇠고기·닭고기·돼지고기·유제품 분야였다.
­쇠고기협상이 가장 어려웠다는데.
▲그렇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미국이 협상에서 우리처럼 목표가 1백이라면 1백50,2백을 제시하지 않고 바로 목표의 근시차를 내놓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둔켈 초안 등을 기초로 수치를 제시하는데 비해 우리는 나름의 논리는 있지만 GATT 규정에 안맞는 얘기를 할 때도 많았다.
­협상의 고비는 언제였나.
▲12월 밤 11시(현지시간)부터 13일 새벽 5시30분까지 6시간반동안 열린 마라톤협상때다. 새벽회의때 원칙을 정해 양보할 것과 얻을 것을 하나하나씩 매듭지었다.
­쌀시장 개방과 관련한 숫자가 정해진 것은.
▲6일 허신행 농림산부장관과 마이크 에스피 미 농무장관이 3차협상을 벌인 자리에서였다.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전화가 협상에 보탬이 됐나.
▲물론이다. 미국 협상팀은 『클린턴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려 쌀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하는 등 협상분위기가 매우 우호적이었다.
­결국 쌀문제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해결됐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리 협상팀이 와서 한 일은 기술적 차원의 적은 노력에 불과했고,한미 양국간의 긴밀한 관계가 문제해결의 열쇠였다.<제네바=박의준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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