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패배 받아들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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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도전기 3국 하이라이트10>
○ . 윤준상 6단(도전자)● . 이창호 9단(왕 위)

장면도(179~200)=윤준상 6단이 백△로 끊자고 했을 때 이창호 9단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이 두 점이 끊어지면 질 것이다. 그러나 이을 수 없다. 이쪽은 팻감이 거의 바닥이 났다. 상변 쪽에 억지로 패를 쓴다면 전부 악수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A로 기어나가는 패는 독약과 같아서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다. 더구나 상대는 이 마지막 경우에 대비해 좌상귀 쪽의 팻감을 고이 아껴두고 있지 않은가.

179로 시간을 연장해 보다가 결국 181로 패를 해소한다. 허무한 일이다. 182로 끊어지면 지는 것을 알면서도 이 9단은 그 수를 눈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응축된 승부의 고통이 잔잔하게 묻어나고 있다. 투혼의 승부사들은-예를 들어 조훈현 9단 같은 사람은-181이 아니라 182에 잇고 버틸 것이다. 그러나 이창호 9단은 불가항력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다. 성(城)을 함락당한 장수가 최후까지 적을 한 사람이라도 더 쓰러뜨리느냐, 고히 자결하느냐의 차이일까.

신예 강호 김지석 4단은 국 후 182를 들었다 다시 놓으며 "여기서 바둑이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 흑이 좋은 바둑이었으나 윤준상 6단의 차분한 추격으로 형세는 느릿하게 뒤집혔다. 철벽과 같았던 우하귀 흑진에서 수가 난 것이 이창호 9단에겐 인정하기 싫은 딜레마였는지도 모른다.

198은 정수. '참고도' 백1로 잡으러 가는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흑8이 선수가 되어 불가하다. 이 판은 264수에 종국하여 백이 3집반을 이겼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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