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시>송찬호 모자,유하 거미혹은언어의감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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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시는 삶 이상도 아니고 삶 이하도 아니다.시가 시인의 삶의 내용이 되고 형식이 될 수 있을때,그 시인의 시적 기교는 하나의 우연이나 기적처럼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송찬호 시인의『모자』(『현대시학』11월호)는 무엇보다도 그의삶의 진정성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난 모자 앞에서 늘 망설이는 편이다/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집 앞에서 머뭇거리는 것처럼/난 하나의 모자를 고른다 ,그렇게 한 권의 훌륭한 책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시구가 그것이고「저기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다/보라,새로운 삶을 만날때내 인사는/이것을 만지작거리며 반가워하는 것이다/이 경의를/빵굽는 냄새나는 이 모자를」이라는 시 구가 그것이다.
이때 모자는 단순한 문화적 장식품이 아니라 한 권의 책이면서,동시에 빵을 굽는 기계이기도 한 것이다.시인은 한 권의 책을모자로 비유하고,그 모자의 외관 속에 지식의 내용을 담고 있는것이다.우리들은 타인들과 만날때 아름다운 모자 를 쓰고 반갑게웃지만 적어도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왜냐하면 그 모자-두뇌속에는 음험한 지식이라는 무기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고,그 무기는 현대사회의 이윤(빵)을 낳는 기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송찬호의『모자 』는 미셸 푸코가 역설한 바있듯이「문화적 무의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유하 시인 역시 그의 세번째 시집 속의『거미,혹은 언어의 감옥』(『세상의 모든 감옥』민음사 刊)이라는 시를 통해 시인의 문화적 무의식을 정치하게 드러내 놓고 있다.따라서「거미」는 시인과 동일시되고,거미줄은 그의 언어와 동일시 된다 .
결코 지식(혹은 언어)은 가치 중립적인 것도 아니고,순수한 것도 아니다.지식은 돈이고 명예이고 권력이다.지식의 有無에 따라 有罪가 결정되기도 하고,無罪가 결정되기도 한다.송찬호와 유하 시인은 그들의 언어학적 상상력을 통해 현대사회 의 문화적 무의식의 체계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희화화시켜 놓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에 있어 문화적 무의식을 반성하는 것,이것만이 90년대 한국시단의 가장 도전적인 쟁점이 될 것이다.
반경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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