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씨가 쓴 한나라당 공천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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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우리 사회는 진보와 개혁을 표방한 독선적 집단주의와 자유주의로 분식된 인기영합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로 위장된 국수적 모험주의의 도전을 받고 있다."

"생산과 고용의 정체는 사회성원 간에 치명적인 불화를 키워가고 있고, 이 정권을 지지했던 젊은 층과 서민마저도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

15일 한나라당 운영위원들에겐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 배포됐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쓴 글이다. 당 공천심사위원인 그는 이날 공천심사 기준 등을 논의한 운영위 회의를 위해 이 글을 썼다. '공천심사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그 글은 심사위원 15명 전원의 명의로 발표됐다. 여기엔 사회현실에 대한 李씨와 한나라당의 공통된 인식이 담겨 있다. 현 정권을 '진보와 개혁을 표방한 독선적 집단주의'라고 꼬집은 게 그 예다.

李씨는 "한나라당이 이 사회의 마음 든든한 대안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걸 위해 "능력과 경륜을 가진 후보들을 추천하고자 하며, 새로움을 추구하면 낡음은 배제되게 마련이므로 영입과 수용에 못지 않게 배제의 논리도 개발돼야 한다"고 썼다. 구체적으론 "부패와 부정비리에 연루된 정치인,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지탄받는 정치인은 이제 떠나야 한다"고 했다.

李씨는 "공천심사 기준만 제시하는 것보다는 심사위의 입장을 정리한 글을 내놓는 게 좋겠다는 뜻에서 썼다"고 했다. "앞으로도 화끈하게 도와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공천심사위 대변인을 맡아달라는 제의는 거절했다. "소설가라서 누구에게 묻지도 않고 맘대로 말하고 글을 쓰는 버릇이 있는데 그랬다간 당이나 공천심사위에 누를 끼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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