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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 수그러든 민주당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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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 공전책임” 여론에 한발 후퇴/“특정인 문제로 파행” 오해우려/「12·12」등 3대의혹만 포괄적 마무리 요구
민주당이 과거청산 문제에서 개혁문제로 체중을 옮겼다.
이기택 대표의 「미래지향과 과거청산 병행론」이후 당내에 거세게 일던 과거청산 요구는 일단 수그러든 셈이다.
민주당의 이런 급작스런 태도변화는 여론의 비난을 받을 한계에 이르렀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회일정을 둘러싼 총무회담의 가장 큰 걸림돌이 일거에 치워졌다.
○…민주당측의 입장이 선회한 고비는 8일 저녁 긴급 최고회의. 이날 회의는 과거청산 요구의 사실상 포기에 대한 격렬한 논란으로 3시간 가량 걸렸다. 이 바람에 여야 총무회담도 오후 10시 예정에서 11시로 늦추어져 이뤄졌다.
여야 사이에 가장 큰 쟁점은 김대중 납치사건 및 내란음모조작사건 진상조사특위를 국회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김대중 전 대표라는 당내 최대 주주가 관련된 일이어서 누구 한사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납치사건 큰 쟁점
최고위원중의 한사람은 『국정감사할 때부터 일부의원들이 충성경쟁을 하는 통에 다음문제까지 초점을 흐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 사건도 조사돼야 하겠지만 어느 한사람을 위해 예산안 심의를 막고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은 누구나 싫다. 그런데도 아무도 말을 할 수 없는게 당내 사정』이라고 실토했다.
그러나 국회가 공전되기 시작하고,그 모든 책임이 특정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과거조사에 있는 것처럼 비쳐지자 김 전 대표의 측근인 권노갑 최고위원이 직접 예산안 심의와 납치사건 조사를 연계시키지 말도록 요청했다. 특히 최근 정계복귀설까지 나돌아 국회운영 문제가 김 전 대표문제로 걸리적거리는 것은 오해를 살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런 민주당내 사정을 이용하려는 민자당의 의도도 과거청산요구를 누그러뜨리게 했다. 정대철고문은 이날 회의중 잠시 나와 『민자당측이 김씨 관련사건 특위구성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가 있다. 그럴경우 민주당 입장이 난처해진다』며 이날 논의내용을 전했다. 새삼 조사를 해봐야 더 나올 것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증언문제와 과거 비리관련자 공직사퇴 요구 등도 예산안과 연계하면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대세에 몰려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12·12사건,율곡비리,평화의 댐문제 등 3대 의혹사건에 대한 포괄적인 마무리만 요구하는 선으로 과거청산 문제는 거의 취소해 버린 것이다. 한 참석자는 『이미 국정조사를 한 것이니 보고서라도 내놔야 할 것 아니냐. 이런식의 포괄적인 요구로 강경한 입장을 가진 의원들을 설득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선 철회불가
이날 회의에서도 강경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세형 최고위원 등은 『이번 정기국회를 지나면 과거청산 문제를 다시 꺼내기 어려워진다』고 철회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런 논란속에 회의는 3시간 가까이 걸려서야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개혁입법을 전면에 내세우는데도 논란이 벌어졌다. 이 문제를 먼저 제기한 개혁정치모임측은 국가보안법 개정을 최대쟁점으로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최고위원은 국가보안법은 김영삼대통령이 과거 야당 총재시절 폐지를 주장하다 최근 개정불가 방침으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여야의 입장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쟁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태식총무는 『영수회담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총무보고 해결하라는거냐』며 회의장 밖에까지 들릴정도로 반발해 연계 대상에서 제외키로 결론을 내렸다.
○타결가능성 커져
민주당이 예산통과와 연계시키겠다고 주장한 안기부법·통신비밀보호법은 민자당측도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조항에 상당한 이견이 있어 민자당으로서는 민주당의 연계방침이 곤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러한 연계주장은 보안법 등 중대한 걸림돌을 제거하고 일단 예산심의를 시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결의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예산국회가 공전된다면 민자당측도 책임을 같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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