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두달중간평가>덜가진자 배려에 힘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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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실명제는 분명히 正義사회를 이루기 위해 단행된 것이다.
그러나 실명제가 단행 된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정부든,국민이든 다들 똑바로 바라 보아야 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역설적으로「실명제가 정의 사회를 기대만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명제가 장기적으로 추구하는 정의 사회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반면 그때까지는 도리어 각 계층간 정의에 역행하는 갖가지 일들이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 갈등에 어떻게 미리 미리 손을 쓰느냐가 실명제 정착의 가장 큰 관건이기도하다. 실명제는「가진 자」들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가진 자」들보다는「못 가진 자」들이 中短期적으로는 실명제로 인해 더 고통을 받게 돼 있다.
일반 서민이나 근로자.무주택자들이 실명제 파장을 벗어날수 없는 것이다.
봉급 생활자의 경우 별 관계 없어 보이지만 과표 양성화로 사업자들의 세부담이 높아지면 물가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아 영향을받게 된다.최근 부동산 임대업자에 대한 과세강화로 要地에 있는점포의 임대료가 슬금슬금 오른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성장이 떨어지고 경기 부진이 계속되면 실업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노동연구원이 내년 실업률을 87년이후 최악의 수준인 3.
1~3.2%로 보는 것도 실명제 상황과 관계가 깊다.
인플레.저성장.실업등으로 가장 고통 받는 계층은 결국 언제나「못 가진자」들인 것이다.
강력한 투기억제 조치로 부동산 매매시장이 얼어붙어 무주택자가득볼것처럼 보이지만 중기적으로는 기대금리수준 하락,금융자산 기피,租稅 轉嫁등의 영향으로 전.월세값은 오히려 오를 공산이 크다고 河晟奎 中央大교수는 최근 經實聯세미나에서 전망했다.
실명제 이후 정부가 엄청난 돈을 풀고 있지만 담보력이 약한 중소기업.영세기업의 어려움은 계속 되고 있다.
반대로 대기업이나 담보력 좋은 알짜 중소기업들은 풍성해진 자금을 쓸 곳이 없어 고민이란 얘기가 들리는 상황이다.자금에 관한한「富益富 貧益貧」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담보력이 약한 영세기업은 은행.신용금고등에서도 등을 돌려 결국 사채시장에서 종전보다 훨씬 높은 금리로 돈을 끌어쓰는 형편이어서 무자료 거래 경색과 함께 二重苦를 겪고 있다는 호소가 관계요로에 속속 접수되고 있다.
실명제 초기에 이처럼 경제정의에 역행하는 듯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지도 모른다.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모두가 어느 정도의 위험.고통을 나누어야함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명제 실시에 따른 부담을 가장 앞장서 져야할 정부가스스로의 위험 부담은 가장 꺼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표 양성화를 기대한다면 먼저 세율을 인하하는 것이 순리고 실명제로 당장 경기가 더 어려워진다면 적자재정을 감수할 각오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무책임一貫 최근 재정학자 11명이 종합과세를 앞당기고 세율조정을 단행하는등 세제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對정부 건의문을 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두달 간의 시행결과만 보고 실명제 성공을 낙관하거나,일부 부처에서만 실명제를 챙기고 있을뿐 나머지 부처에서는 마치 강 건너 불보듯 손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다.
실업.주택.인플레.저성장등의 문제는 정부 모든 부처가 함께 머리를 싸매고 달려들 문제지『실명제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보탬이된다』는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李在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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