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살펴가며 개각폭 저울질/청와대 「여객선참사」문책 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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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무부처만 바꿀듯” 관측 지배적/「구설장관」 2∼3명포함 가능성도
서해페리호 침몰사고는 적어도 교통장관의 경질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김영삼대통령도 이번만은 응분의 책임을 묻겠다고 단언했다.
김 대통령이 이번 문책인사에서 그동안 설왕설래돼오던 일부 문제의 각료들까지 묶어 할지,순전히 이번 사고차원에서 국한할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잇따른 대형참사에 의한 민심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그 폭을 재고 있는 듯하다. 시기는 시체인양이 끝나는 시점이 유력해지고 있다.
○…김 대통령의 「응분의 책임론」과 관련,이경재 청와대 대변인은 『어느선까지 문책한다고는 할수 없으나 김 대통령의 의지는 단호하다』며 이전처럼 실무자 차원의 적당한 문책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대변인은 들끓는 여론을 의식,『김 대통령은 여러차례 「안전」을 당부했음에도 또 사고가 난것을 유감스러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체인양후 단행
김 대통령은 부산구포 열차전복,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격장 폭발,정신병원 화재사고 등이 연이어 터지자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울지하철공사가 진행중인 한강수면하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 안전의 중요성을 누누이 당부한바 있다.
그럼에도 내각이 자신의 지시를 챙기지 않아 신정부 출범후 최대 참사가 난데 대해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은 특히 이같은 참사를 「치자의 덕」과 연결짓는 전통에다 사건 자체가 워낙 대형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문책 불가피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이는 대형 사건·사고가 날때마다 나오는 여론과 언론의 인책주장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온 김 대통령에겐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냉해와 경기위축 등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청와대다.
김 대통령이 개각설이 나올 때마다 『개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력 부인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의 엄중문책 의미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국정차질 우려
○…김 대통령은 11일 오전 사고현장을 둘러보고온 황인성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자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둬들이도록 했다.
한 고위관계자는 『총리의 사의가 즉각 반려되긴 했지만 정부는 총리가 사의를 표할 정도로 사태를 심각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일어났던 이른바 육·해·공사고에 모두 책임이 있는 이계익 교통장관의 경질을 당연시했다.
염태섭 항만청장의 경질은 처음부터 기정사실이라는게 청와대 시각이다.
사고발생 이튿날인 11일 오전의 청와대 기류는 사고가 사고인만큼 이 교통장관만의 경질로는 사태수습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하에 그간 물의를 빚은 2∼3명의 장관을 동시에 교체하는게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야당의 내각 총사퇴 요구와 민심수습 및 국면전환 차원에서 개각폭을 늘려잡는게 낫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부분개각으로 ▲잠잠해질 상황이 아니고 ▲자칫하다가는 자리를 겨우 잡아가는 내각의 기저를 흔들지 모른다는 반론이 강력히 제기돼 이 교통장관에게만 책임을 국한하는게 낫다는 쪽으로 청와대 참모들의 의견이 기울었다는 후문이다.
○4∼5명선 추측도
특히 공직자 재사등록 파동을 마감하는 연말의 당정개편으로 국면전환을 꾀하려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일정에 부분개각은 큰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사고책임 국한론」이 우세해 졌다는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김 대통령이 황 총리의 사의를 반려하자 해당장관의 인책쪽으로 입장을 정리해가면서 이해구 내무장관의 포함여부를 한때 조심스레 저울질했다고 한다.
○…김 대통령은 12일 사고현장을 직접 순시한뒤 여론의 동향 등을 고려,개각폭에 대한 단안을 내릴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 내무장관의 포함여부는 「내무장관의 지휘를 받는 경찰청장 문책은 어렵다」는 11일의 수석비서관회의 결론이 시사적이다. 이 교통장관 교체만으로 국민의 분노와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검토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
일각에선 김 대통령 특유의 승부가 나올지 모른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연말 당정개혁을 앞당겨 실시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다. 그럴경우 최소한 4∼5명선은 아니겠느냐는 것이나 현재로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개각을 전면 부정해온 김 대통령으로선 이같은 개각 요인의 발생이 매우 엄중한 시련이라 아니할 수 없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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