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없이 면돗날 질의/「봐주기」없는 여의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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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법관용퇴 무책임·추곡전량수매”… 종교비리도 들춰/정부서 자찬하는 실명제도 맹공/질의만으론 여야구분 안될정도
문민시대 첫 국감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여당의원들이 그렇다.
과거 국감이라면 으레 야당의원들이 정부정책을 시시콜콜 공격하고 여당의원들은 점잖은 표정으로 앉아있는게 고작이었다. 어쩌다 질문을 하더라도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려는 방패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여당의원들은 야당의원 못지않은 날카로운 질의공세를 펼치고 있다. 오히려 시정을 촉구하거나 질책하는 목소리보 태도가 야당보다 강경하고 냉소적인 경우도 있다.
5일 법사위의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강신옥의원은 최근 재산공개 파동으로 물러난 김덕주 전 대법원장에 대해 『법관의 신분과 임기는 법으로 보장돼 있는데 대법원장이 사퇴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김 전 대법원장의 사퇴에 대해 용퇴라고 반색했던 청와대의 반응과는 정반대다. 강 의원은 이어 『신임 대법원장이 자신보다 시험후배라고 대법관들이 물러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며 일부 대법관들의 자진사퇴까지 문제삼았다.
○호통소리 높아져
농민인 박경수의원은 4일 농림수산위의 농림수산부 감사에서 『농림수산부는 냉해라는 말조차 꺼리는 것 같다』고 힐난한 뒤 『냉해피해가 극심한 만큼 올해 추곡수매는 농민이 원하는 전량을 수매해야 하며,수매가는 적어도 8% 이상 인상돼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야당의원들보다 더 강력하게 제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초선인 박종웅의원은 4일 문공위의 문화체육부 감사에서 『종교계의 연간 헌금·시주돈이 조단위에 이르고 있는데,이같은 거액의 현금이 지하경제의 공급원이 되기도 해 종교단체가 검은 돈의 도피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추궁했다. 그동안 종교계는 좀체 건드리지 않아온 관례에 비춰볼때 「성역」을 깨뜨리는 과단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불성실 답변에 대한 힐책강도도 야당의원 못지않다. 유성환의원은 4일 교육위의 경기도 교육청 감사에서 교육감이 운동회 개최현황에 대해 『교육청이 파악할 의무도 없고,보고받은 일도 없다』고 말하자 『운동회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답변하는 교육감은 뜨거운 가슴이 없는 무자격자』라고 큰 소리로 호통쳤다.
그러다보니 다소 억지같은 해프닝을 일으키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원광호의원이 5일 국무총리실에 대한 감사에서 감사시작과 동시에 의사진행발언을 신청,『요구한 답변자료를 아직 받지못했다. 자료를 받을때까지 감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해 한바탕 소동.
○욕심넘쳐 무리도
여당의원들의 집요한 추궁이 돋보인 것은 개혁중의 개혁이라고 정부가 자랑하는 실명제논의. 5일 재무위의 재무부 감사에서 최돈웅의원은 실명제 실시에 대해 『원칙은 옳지만 여건과 시기를 제대로 고려한 것인가.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지배하고 있다』며 새 정부의 개혁 핵심이라는 실명제의 기본취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손학규의원은 『실명제실시후 당국자의 태도가 변화무쌍하다』며 정책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고,이상득의원은 『올해는 통화당국이 통화량 관리를 포기한 해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라며 힐난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민주계
과거 같으면 권위의식에서 질의를 하지 않았을 여당의 사무총장인 황명수의원이 4일 국방위 감사에서 『6공의 성급한 핵부재선언과 핵연료 자급생산포기로 우리는 알몸으로 무장괴한과 대결하는 격이 되었다』며 핵정책을 비판했다.
이같은 여당의원들의 적극적 의정활동은 문민시대의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로는 국감대상이 새 정부 스스로 단절을 주장하는 구정부(6공)가 남긴 결과물들이란 점이 꼽힌다. 대부분 과거와 달라진 여당의원상이 민자당내 민주계 의원들에 의해 구현된다는 점도 주목할만한데,이에대해 일부에서는 야당하던 「관성」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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