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기자評 광고인용 영화사들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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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문에서 영화 광고를 보면 ‘○○일보 아무개 기자’라는 식의 평을 넣던데 기자의 동의를 구하고 하는 것인가. 평을 넣고 안 넣고의 차이가 실제로 있는지도 궁금하다.

A:동의? 구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한다. 기사를 쓴 기자에게 사전에 물어보지 않고 영화사 마음대로 싣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얘기다. 한 일간지 기자는 주말 아침신문 광고에 '2002년 마지막 감동! -○○일보 아무개 기자'라고 대문짝 만하게 자기 이름이 난 걸 보고 얼굴이 벌개졌노라고 하소연한 적도 있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그녀는 떠나버린 것을.

홍보 담당자들이 광고에 기자 평을 인용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넣는 이유는 물론 권위 확보를 위해서다. 언론에서 이러이러한 호평을 했으니 당신이 문화인이라면 마땅히 관람해야 할 영화라는 뉘앙스로 암묵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언론의 평은 오락물보다는 예술 영화에서 더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워낙 인지도가 낮아 언론에서 무상 애프터서비스 보증까지는 아니더라도 '품질 인증서'를 붙여줘야 20대 후반~30대 중반 관객층이 움직인다는 설명이다.

재미난 점은 이제는 홍보 담당자들도 인용의 '약발'을 별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인용이 굴비 엮듯 줄줄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더 나은 홍보 수단을 찾지 못한 과도기적 상황(?)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습관이요, 관행이라고 봐야 한다.

요즘은 언론 보도보다 네티즌 평이 득세하는 형국이다. 이유는 직설적이기 때문이다. 홍보 담당자들이 말하고는 싶지만 끝내 말하지 못한 그것, 근엄한 언론에서 차마 나오기 힘든 그것을 인터넷에서는 무릎에서 류마티스 관절염 캐듯 캐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영화 광고에 쓰인 네티즌 평을 보자. '우리들이 다시 느끼고 새겨야 할 최고의 영화!'. 요건 그래도 점잖다. '졸 생각말구 눈 부릅뜨고 봐요. 정말 멋진 영화~~~''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캬~!

이참에 홍보 담당자들에게 부탁할까 한다. 무단 인용(!)도 좋다. 하지만 부정적인 기조의 기사에서 '1%의 좋은 것'만을 뽑아내는 식은 말아주시길. 기사 쓴 기자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떠나 화가 나기 때문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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