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깡통도 가보 미국인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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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 것이나 진귀한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가치 판단 기준에 대한 재미있는 경험을 하면서 한국인들은 이럴 경우 어느 쪽을 더귀하게 생각할 것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다.
미국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州에 있는 27년된 목조 단독주택에최근 전세를 들면서 집주인 할 보드런씨(62)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그가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그것 내버렸느냐』고 물었다.
그는 집안 시설물 사용설명을 하던 중이었다.
보드런씨는 부엌옆 벽에 붙어 있던 조그만 알루미늄 깡통의 행방을 묻는 것이었다.
그 깡통은 못으로 벽에 고정돼 연필꽂이로 사용되던,내 눈에는보잘 것없어 보여 반쯤 구겨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것이었다.
내가『내버렸다』고 대답하자 그는 무척 낙담하는 표정이었다.
그는『그런 깡통은 이제 절대로 구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하고「귀한 골동품」이라고 거듭 애석해 했다.
혹시나 해서『쓰레기통에 가서 찾아보겠다』고 말하자 그는『제발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진지하게 부탁까지 했다.
다행히 쓰레기통 한구석에서 구겨진채로 찾은 깡통을 본 그는 집나갔던 아들을 찾은만큼이나 반가워 했다.
이 깡통은 콜로라도州 골든시에 본공장을 둔 아돌프 쿠어스 맥주회사가 1970년대 만들어 팔았던 7온스짜리 맥주캔이었다.
보드런씨는 깡통을 찾은 김에 보여줄 것이 있다며 바깥 쓰레기통 놓는 장소옆의 수도꼭지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바닥을 가리키며『여기 돌들을 자세히 보라』고 말하고 시멘트 바닥에 고정돼 있는 주먹만한 돌에서 머리 크기 돌 여덟개를 차례로 하나씩 설명했다.
그들「돌멩이」들은 고향이 각각 쿠바.하와이.콜로라도.아이티.
러시아.폴란드.그리스,그리고 이탈리아였다.
그는 이들 돌멩이를 단순히「기념품」이라고 말했다.
그것들은 보드런씨가 여러 나라를 여행다니면서 구해 힘들여 가져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그들 기념품을 발로 툭툭 차고 돌아섰다.
그리고 구겨진 쿠어스 캔을 투박한 손가락으로 정성들여 펴서는소중하게 신주모시듯 가져갔다.
최근 한국에서 외국으로 주재근무를 위해 출국한 한 가족이 40년이 넘은 낡은 전통가구 하나를 쓰레기처분하고 떠난 경우가 있었다.그 가족들은 꽤 오래되긴 했지만 합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골동품의 가치가 하나도 없어「그 물건」을 버리 기로 했다고말했다. 그리고 그 가족은 인도네시아를 여행했던 친구가 선물로가져다 주었던 발리기념품 가게에서 산 목각 하나를 정성들여 갖고 떠났다.
보드런씨의 물건들이나 한국 가족의 물건들이 모두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지만 두 나라 국민들의 의식 차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아닐 수 없다.
[워싱턴=陳昌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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