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주/주민/영천 할매돌 소유권 다툼(지방 패트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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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험있다” 참배객 몰려들자/선영 수호신­마을소유 맞서
할머니들이 즐겨 찾아 기도하는 돌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할매돌」.
경북 영천군 북안면 관리 속칭 서당골 계곡의 이 할매돌에 「영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참배객들이 몰려들자 이 산의 주인과 주민들 사이에 돌에 대한 소유권 다툼이 일고 있다.
분쟁의 불씨는 각지의 참배객들이 할매돌에 두고 간 시주돈 때문. 최근 참배객들이 놓고 간 돈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 월평균 5백여만원에 이르자 산주 임상길씨(56·울산시 전하동 392)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시주돈은 그동안 관리마을 주민들이 공동관리하며 마을길을 닦는 등 마을발전에 써왔다.
7월말 임씨는 『할매돌은 이곳 서당골 선영에 묻힌 조상들을 6대째 지켜오는 가문의 수호신인데 주민들이 관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이장 염교필씨(50) 등 주민들은 이 돌을 1백여m쯤 떨어진 인근의 국유지 개울가 바위로 옮겨 참배객들을 맞기 시작했다.
그러자 임씨는 『선영의 수호신을 주민들이 멋대로 옮겨놓아 조상들을 노하게 했다』며 영천경찰서에 염씨 등 주민 30명을 절도혐의로 고소하는 등 법적대응을 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그동안 세차례나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나온 주민들은 『산주 임씨가 시주돈이 탐나 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며 『관습상 할매돌은 마땅히 마을 공동의 소유가 돼야 한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할매돌은 짧은 지름 25㎝,무게 10㎏ 정도의 타원형 화강석으로 3백여년간 주민들이 숭배해온 이곳 무속신앙의 상징물.
참배객들이 자신의 이름과 생일·생시를 말하고 소원을 빈뒤 양손으로 돌을 들어 보아 바닥에 붙어 쉽사리 들어올려지지 않으면 뜻한대로 소원이 이루어지고 가볍게 들리면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주민들은 예부터 마을에 돌림병이 번지거나 집안에 흉사가 생기면 으레 『할매돌 다지러 간다』며 참배해왔으나 70년대이후 새마을운동이 확산되면서 「미신타파」라는 구호아래 참배가 한때 금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 할머니들의 이 돌에 대한 「돌같은」 신앙심은 어쩌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 4월부터 『할매돌의 영험이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그동안 뜸했던 참배객들의 발길이 다시 잦아지기 시작,전국 곳곳에서 평일에는 하루 2백∼3백명,휴일엔 5백∼6백여명씩의 참배객들이 몰려 마을앞 진입도로나 빈터가 이들이 타고온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은 그동안 모은 시주돈 7백만원으로 차도를 닦고 간이식당과 화장실을 마련하는 등 참배객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갖췄다. 여기에다 수입원이 되고 있는 「할매돌」을 보호하기 위해 높이 2m의 철책 보호망을 설치하고 24시간 윤번제로 순찰까지 돌고 있다.
현재 이장 염씨가 절도혐의로 경찰에 입건돼 있는 가운데 주민들은 『법정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시주돈을 모아 국도에서 마을까지 6㎞에 이르는 비포장도로를 자력으로 포장하고 마을입구에 대형주차장도 마련하는 등 「부촌을 이루겠다」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어 앞으로 임씨가 어떻게 나올지 관심거리다.<영천=김선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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