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정보」누출 정말 없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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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발표 몇시간전 예금인출·계좌분산 사태/사채 큰손 상당수도 이달초부터 돈빼가
「우연의 일치일까,아니면 정보가 샜던 것일까」.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실시 발표 당일인 12일 서울시내 일부 은행에서 계좌분산·예금인출 등의 사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정보가 사전에 샜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일고 있다.
실명제를 우려한 소위 「검은돈」의 유출은 새 정부 출범 이후부터 은행·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최근까지 계속돼 왔다는 것이 정설이고,이날의 상황도 그 연장선이라 할수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 딱들어 맞는 경우들이 있었던 것이다.
강남지역에 있는 P은행 모지점의 경우 12일 오후 4시30분쯤 3억원이 들어있는 한 가명예금이 가입자의 긴급요청으로 2천9백50만원씩 6개계좌에 분산예금 했으며 나머지 1억2천3백만원은 현금으로 인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강남지역에 있는 J으니행 모지점의 경우도 오후 4시부터 예금인출이 평소보다 늘어났으며 은행마감이 끝난 이후인 5시쯤에는 거액예금자들로부터 예금분산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마감직후 가명계좌를 개설한 거액예금자들이 전화로 예금인출을 요구했으며 마감뒤라 인출해줄 수 없다고 하자 5천만원 또는 3천만원미만의 계좌를 여러개 만들어 분산시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많은 가명예금자들이 계좌를 3천만원 미만으로 분산하거나 분산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들이 실명제가 실시되면 실명화 과정에 일정한도 이상의 예금계좌는 국세청에 통보돼 자금출처 조사 대상이 될 것을 어느정도 감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이밖에 서울 중심가에 있는 S은행 C지점의 경우는 12일 오후 3시부터 거액 자금인출이 집중되면서 은행측이 잔고부족으로 예금인출이 지연되는 등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같이 날짜가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은 아니지만 실명제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이 사채·증권업계 일부에 이미발표 며칠전부터 감지됐다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D증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몇몇 경제관련부처 간부들이 이례적으로 증권의 가명거래 비율·채권시장동향 등을 물어온 적이 있어 실무선에서 이를 근거로 며칠전 「실명제 금명간 실시」라는 내부정보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강남지역의 한 사채업자도 『큰손을 사이에 이달초부터 실명제가 곧 실시된다는 말이 퍼져 이미 상당수가 돈을 뺀 것으로 알고 있으며 발표당일 오후 4시쯤에는 실명제가 이날 아니면 다음달 실시된다는 말이 나돌아 몇몇 큰손들이 뒤늦게 돈을 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실명제 전격실시가 지금까지 다른 어떤 정부정책에 비해 보안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이같은 사례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어 최소한 발표당일의 예금인출과 계좌변동 상황에 대한 실태점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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