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국면전환/이상우(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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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집이 낡아 더 쓸 수 없으면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 사회의 기강과 제도가 낙아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면 역시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 그것이 개혁이다. 개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새집 짓기」에 있지 「헌집 부수기」에 있지 않다. 헌집 부수기는 새집 지을 터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작업이지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헌집 부수기가 도를 지나치게 되면 새집 지을 「집터」까지 깨게 된다.
○교각살우돼선 곤란
새 정부가 들어서서 시작한 개혁정치는 국민들의 적극적 호응속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만큼 광범위하게 ,그리고 깊게 진행되어 왔다. 공익을 앞세워 사리를 탐했던 많은 인사들이 자리에서 밀려났고,법대신 폭력으로 억지를 부리던 질서의 관행들이 된서리를 맞았다. 파사현정은 어느 사회에서나 바른 새 질서를 잡아가기 위해서 쉬지 않고 진행해 나가야 할 「질서잡기」의 기본조치라는 점에서 국민들은 모두 찬동해 왔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것은 사정의 목표가 새 한국 건설을 위한 정지작업이란 점이다. 새 한국 건설의 기초까지 다친다면 교각살우로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개혁의 목표,즉 건설하려는 「새 한국」의 상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 목표가 뚜렷하게 제시되어야 「정지작업」의 방향과 강도,한계를 정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목표로는 「시민민주주의의 정착」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본인권을 보장받으며 고른 복지,동등의 참여기회를 가지게 되는 민주질서를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데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둘째로 「제2의 경제도약」이 국정지표로 꼽혀야 할 것 같다. 삶의 물질적 기초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권적 자유가 보장되었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겠는가.
세번째로는 「국제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온 세계가 하나의 삶의 터전으로 되어가는 세계사적 조류 속에서 역사 흐름의 주류에 들어서려면 국제화가 불가피하다. 요즈음 큰 기업의 총수들과 대표적 지식인들이 다투어 「국제화」를 절규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의식의 폐쇄성이 위기에 이르렀다는 신호라 생각해야 한다.
한가지 더 들자면 진취적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일이다. 위축된 문화 속에서 밝은 사회를 건설할 힘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밝은 내일을 위해 활기있게 일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만 「새 한국」 건설이 가능해진다.
개혁을 「신한국」건설에 맞도록 국면을 바꿀 필요가 있다. 몇가지 국면전환의 방향을 제시해 본다.
첫째,개혁의 방향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어야 한다. 무엇을 없애고,무엇을 금하고,무엇을 버리는 「네거티브」 전략에서 무엇을 만들고,무엇을 새로 시작하고,무엇을 이루는 「포지티브」전략으로 전략의 국면전환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네거티브」 전략은 그 목표를 완전히 달성하면 정상이 된다. 그러나 「포지티브」 전략에서는 목표의 1%만 달성해도 「지금보다 1% 나은 변화」가 된다. 이제부터는 개혁의 중점을 무엇을 부수는 데서 무엇을 창조하는 데로 옮겨야 한다.
○개혁주도세력 양성
둘째,개혁의 방해세력을 제거하는 데서부터 개혁의 주도세력을 키우는데로 정책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개혁은 추진세력을 튼튼히 길러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이다. 개혁의 주력군을 키우지 못하면 그 개혁은 그림으로만 남는다. 사람들의 지나간 잘못을 찾는데 힘을 쏟기보다 그 사람의 앞으로 일할 능력을 발견하여 키우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을 개혁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일이 개혁 성공의 지금길이다.
셋째,질시의 문화를 선망의 문화로 고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보다 앞선 사람을 헐뜯어 내리는 풍토에서는 사회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나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칭송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모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뛸 것이다. 「민주화」를 앞서가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하향평준화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많다. 그래서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에 영합하기 위해 「평준화」 정책에 젖어들게 된다. 「고등학교 평준화」가 그 대표적 예다. 더 일하는 사람,더 우수한 사람이 칭찬받지 못하고 대우받지 못하는 풍토,우승열패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질서에서는 게으른 많은 사람들이 마음 편해질지 모르나 발전이란 기대할 수 없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란다면 우승열패,신상필벌의 기장을 세워야 한다.
새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은 지난 반년간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 개혁이 「신한국」건설로 이어져 나가려면 그 개혁의 노력에서 중대한 국면전환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한다.<서강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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