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금지구역 사진관광 자성을(독/자,이제는…: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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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모나리자 앞에서 증명사진 찍기/감상은 뒷전… “찰칵”하면 코리안
외국인 관람객들로 항상 붐비는 파리시내 루브르박물관. 그중에서도 『밀로의 비너스』,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전시돼 있는 방은 언제나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야,빨리 찍어.』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찍으란 말아』
『얼굴만 나오게 적당히 알아서 찍으란 말야. 사진 앞찍으면 여기 온게 무슨 소용이 있어.』
비너스상을 에워싼 복잡한 인파 사이로 한국말이 몇마디 오가고 곧 이어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포즈를 취했던 청년은 이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다른 전시물엔 눈길조차 주지않은 채 서둘러 그 방을 빠져 나간다. 전시실안에선 사진촬영 금지라는 팻말은 이 한국청년에게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하다. 다른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도 전혀 개의하는 눈치가 아니다. 비너스상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는 「증명사진」이 그에겐 중요할 뿐이다. 에펠탑·몽마르트르 언덕·베르사유궁전·노트르담성당…. 파리시내 관광지 어디를 가나 이제는 한국사람들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다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증명사진 찍는 것을 여행목적의 전부로 여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역사적인 유래나 배경을 설명하면 오히려 귀찮다는 표정일 때가 많아요. 증명사진 찍었으면 됐지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투지요. 그럴 때면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5년째 파리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P부인은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스스로 민망할 때가 많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증명사진 관광에 혀를 찬다.
같은 관광지에서 보게 되는 다른 나라 사람들. 그들 역시 사진을 찍지만 자신의 얼굴이 들어가는 증명사진보다 그 나라의 색다른 퐁경이나 풍물을 사진에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덜렁 카메라만 들고 나온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안내책자를 열심히 잃어가며 구경한다. 그러면서 간간이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차에서 내려 증명사진 찍기가 무섭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옛날처럼 해외여행이 어려웠을 때라면 외국에 갔다온 사실 자체가 주위에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증명사진 찍기 위한 해외여행은 이제 정말 사라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P부인의 충정어린 충고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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